김황식 총리 후보자는 … 주변선 “따뜻한 보수” 스스로는 “중도저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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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조용히 살아 왔는데….” “내 성격에 맞지 않는데….”

16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된 김황식 감사원장은 지난주 내내 우울해했다고 한다. 그의 입에서 독백처럼 나온 말들은 “나는 여기가 딱 맞다. 나처럼 정적인 사람이 그 직(총리직)에 맞겠나”였다고 한다.

감사원의 한 간부는 “수차례 고사하다가 결국 총리직을 맡겠다고 한 이유는 공직자로서 임명권자의 뜻을 끝까지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총리 후보자의 가족들도 인사청문회에서 시시콜콜한 가족사까지 공개된다며 강력 반대했다고 한다.

김 후보자를 2년간 접했던 감사원 간부들은 그를 “소탈하면서도 천성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불편해하는 스타일”로 평한다. 그가 총리직을 고사했던 건 자신의 병역 면제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전면에서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총리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후보자는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전남의 수재다.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한 뒤 사법부 요직을 거친 ‘정통 엘리트 법관’이었다.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광주지법원장 등을 역임한 뒤 2005년 11월 대법관에 올랐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시절엔 단일호봉제 도입을 성사시키는 등 사법행정 경험도 쌓았다.

법조계와 감사원에선 김 총리 후보자를 ‘따뜻한 보수’로 평한다. 2004년 광주지법원장 재임 당시 발간한 저서 『지산통신』에서 그는 스스로를 ‘중도저파(中道低派)’로 소개했다. “중도좌파도 중도 우파도 아닌 소외계층을 보듬는 중도”라는 거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기독교 법조인 모임인 애중회(愛重會) 회장이기도 하다.

반면 김 후보자는 일부 공안사건에선 보수 성향을 보여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2006년 전교조 간부들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돌려보낸 게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9월 감사원장에 취임한 그는 원칙을 강조하며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춘 감사를 진행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군 지휘·작전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최근엔 식품·사교육비·주거 등 ‘서민밀착형 감사’에 주력했다.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선 낙오자를 배려하는 ‘공정사회론’을 제시했다.

그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은 16일은 그의 62회 생일(음력)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회갑날인 2008년 9월 8일 감사원장에 임명됐었다. 지난 4월 공개된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김 후보자의 2009년 재산은 10억8952만원이었다.

김 후보자는 이날 “부족한 내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돼 영광이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대통령을 잘 보좌해 부강한 나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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