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라운지] "뉴욕의 설날은 인터내셔널 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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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 630만 시대-. 외교통상부의 2003년 통계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3% 정도가 해외에 나가 살고 있는 셈이다. 2001년에 비해 12%가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7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름도 생소한 중남미의 세인트 루시아에서 아프리카의 베냉까지 세계 173개 국가에 한인의 발길이 닿아 있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한인동포들의 땀과 눈물, 기쁨과 성취 등 다양한 삶을 '코리안 라운지'를 통해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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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

▶ 뉴욕 청년학교 풍물패가 지난해 설 행사 때 맨해튼의 한인타운에서 신명난 풍물놀이를 펼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설이 한인만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함께 즐기는 국제적 명절로 발돋움하고 있다. 뉴욕의 플러싱 JHS 189 중학교는 올해 설 행사 이름을 '인터내셔널 데이'로 바꿨다. "설이라고 했더니 타민족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더군요." 한인 학부모회 최윤희씨의 말이다. 설 음식 맛보기와 부채춤 공연 등 다채로운 설 잔치. 여기에 여러 민족 학생의 호응이 폭발적으로 일면서 '설'을 아예 '인터내셔널 데이'로 바꿔 부르기로 한 것이다.

"다운타운을 돌며 한바탕 신명난 판을 벌이지요. 풍물놀이 행사를 지켜보면 피부색이나 생김새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돼 어울립니다." 미국 뉴욕의 '청년학교' 사무국장인 문유성(38)씨. 그는 우리 명절을 다른 민족과 공유하는 한마당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민 온 땅에서 다들 힘들게 살다보면 이민족 간 갈등이 생기곤 합니다. 설 행사를 통한 화합의 자리가 이런 반목을 시원하게 날려버리지요." 문씨는 "한인만의 축제이던 설이 히스패닉(라틴계)은 물론 흑인.백인 등 뉴요커(뉴욕 주민) 모두가 동참하는 다민족의 흥겨운 놀이마당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9년째를 맞는 설 풍물놀이 마당은 청년학교 산하의 '문화패' 회원 20명이 중심이 된다. 특히 대학 풍물패엔 중국계는 물론 라틴계와 백인 학생들도 끼어 있다. 이들은 12일 오전 뉴욕에서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플러싱의 한인회가 주관하는 설날 퍼레이드 참가로 올해 설 행사를 시작한다. 설날 퍼레이드는 한인회가 중국계와 같이 벌이는 행사. 카리브해의 라틴계를 비롯해 인도.그리스.유대인들도 동참한다. 통신 대기업인 버라이존과 전기회사인 콘에디슨 등 몇몇 미국 기업이 후원사로 참여할 정도로 이 행진은 규모가 커졌다. 그야말로 '한인의 설'이 '다민족 이벤트'로 발전하는 추세다.

또 뉴욕공립도서관 플러싱 분점은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11일까지를 '설날 주간'으로 정하고 한국을 소개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뉴욕의 수재학교 브롱스 과학고의 한인 학생들도 설날인 9일 전교생에게 부채춤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simsb@joongang.co.kr>

*** 뉴욕 퀸스 초등학교 너스범 교장

"전교생이 한국 설 놀이 함께 즐겨요"

뉴욕시 퀸스 더글러스턴의 PS203 초등학교. 이 학교 캐럴 너스범(65.사진)교장에게 설은 특별한 날이다. 지난달 13일 설 축제(Lunar New Year Celebration)가 이 학교에서 펼쳐졌다.

"나는 설을 늘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렇게 멋진 한복도 입을 수 있으니까요." 너스범 교장은 설 잔치에 하얀 바탕에 색동수가 놓인 한복을 입었다. 이 학교의 1년 행사 중 설 잔치가 가장 풍성하다. 참여율도 가장 높다.

전체 750명 가운데 한인 학생이 200명에 이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스범 교장이 행사를 열심히 챙기는 덕이다. 올해도 그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과 더불어 정성껏 잔치를 준비했다. 설 전통놀이와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민속 공연에 한국 음식을 곁들인 하루 행사에 전교생이 거의 다 참여했다. 너스범 교장은 한국전통문화 매니어다. 그는 "설날이 한국의 고전미를 가장 듬뿍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뉴욕지사=신동찬 기자<nydcsn@joongang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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