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과 통합진료로 작은 암도 족집게처럼 찾아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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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폐암팀 교수들이 한 명의 폐암 환자를 위한 통합진료를 하고 있다. (왼쪽 앞부터) 종양내과 김상위 교수,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 영상의학과 김미영 교수, (오른쪽 뒤부터) 방사선종양학과 송시열 교수,호흡기내과 김우성 교수, 방사선종양학과 이현진 전공의(레지던트 3년차). [김성룡 기자]

암 수술을 가장 잘하는 병원을 찾고 싶다면 수술 건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사와 의료기관의 경험이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수술을 많이 한 병원이 치료성적이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논문에서 입증된 바 있다. 선진국에서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할 때 수술 건수를 기준으로 삼는 이유다.

중앙일보가 분석한 2008~2009년 전국 의료기관 암 수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암 수술을 가장 많이 한 곳은 서울아산병원으로 9개 종류의 암에서 총 8902건을 수술했다. 이는 전국병원의 암 수술 건수 9만4762건 중 9.4%에 해당하는 수치다(본지 ‘대한민국 암 대해부’ 7월 20일자 참고). 2위 병원과의 격차는 795건이었다.

수술만 잘한다고 실력 있는 병원일까. 암 치료법은 크게 수술과 항암제·방사선요법으로 나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암세포를 공략하는 데 쓰는 ‘무기가’ 다양하지 않았다. 각 암의 진행단계에 맞는 치료법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었다. 어느 병원을 가든 적용되는 치료법에 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암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항암제와 방사선 요법이 발달해 세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최선의 치료법에 대한 의사들의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의 김태원 교수는 “환자마다 수술과 항암제·방사선치료를 어떤 순서로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생존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암센터 대장암팀 유창식 교수는 “암치료는 이미 의사 한 명이 맡아서 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고차원의 함수가 됐다”고 했다. 여러 진료과의 전문의가 머리를 맞대고 팀별로 암치료를 펴게 된 배경이다.

통합진료, 국내에 처음 소개

명의만 좇던 시대가 가고 의료진의 팀 플레이가 강조되고 있다. 한 명의 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 한 명이 아닌 여러 진료과 전문의가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협진 시스템을 갖춘 이른바 통합진료인 것이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등 세계 유명 암센터가 적용하고 있는 통합진료 시스템을 국내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이 처음 소개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암센터 통합진료실을 찾으면 한자리에서 내과·외과·방사선종양학과·종양내과·영상의학과 등 5개과 의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진료비는 평상시 의사 한 명에게 진료를 받을 때와 같다. 다른 치료법은 없는지, 이 방법이 최선인지 등 환자가 다른 의견을 듣기 위해 여러 진료과를 돌며 불필요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암센터 이영주 소장은 “어떤 암환자가 오더라도 최적의 진료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소개했다. 환자 개인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 좋고, 사회적으로는 의료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2009년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에서 통합진료를 받은 환자 86명을 대상으로 고객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98.8%가 암을 진단함과 동시에 수술·항암제·방사선 요법 등의 치료계획을 세우는 통합진료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무엇보다 통합진료의 장점인 의료진 간 협동성과 서비스의 신속성을 높이 평가했다.

응급 암환자 위해 신속한 대응체계 구축

암환자를 배려한 선진 시스템은 또 있다. 암환자만을 위한 응급실인 긴급진료실이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갑작스러운 통증과 고열 등 응급상황을 맞는다. 이때 대형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지만 암환자가 감수하기엔 치료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암환자는 응급실에서 평균 32시간을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내과 김태원 교수는 “암환자 전용 응급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며 “치료 중이거나 경과를 관찰 중인 암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신속한 대응체제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암환자를 체계적으로 진료하는 셈이다.

이 같은 성과 뒤에는 연구가 뒷받침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보건복지부의 혁신형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돼 2007년부터 연간 40억원씩 5년간 200억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이로써 하버드의대 다나파버 암센터를 비롯한 파스퇴르 연구소,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등 선진국의 암연구소와 중개연구를 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혁신형 암연구 사업단은 산·학·연과 연계해 한국인에게 많은 위암과 폐암·유방암·대장암의 표적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항암물질이 암 조직에 정확히 전달되도록 하는 약물 전달 매개체에 집중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분자영상 진단 원천기술을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이는 암뿐 아니라 파킨슨병과 치매 등 난치성 질환을 초기에 진단하고 치료제를 선택하거나 치료효과를 평가하는 첨단기술이다.

글=이주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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