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의 첫 우승에 MVP, 안 믿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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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말이 실감나네요."

배구 KT&G 2005 V-리그에서 여자부 우승을 이끌어 낸 최광희(32.KT&G.사진)는 9일 "상복(賞福)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으려고 13년을 기다린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우승한 게 믿어지지 않아 시상식 후 후배들과 '우리 우승한 것 맞나'라며 서로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실업선수 생활 13년 만의 첫 우승인 데다, 최우수선수(MVP) 상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한일합섬 시절에는 최강 LG정유(현 GS칼텍스)의 독주에 막혀 우승컵을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했다. 한일합섬이 해체되고 99년 KT&G에서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한 뒤에는 현대건설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해야 했다.

우승에 대한 열망을 식힐 수 없었던 최광희는 열 살 터울의 후배들과 코트를 뒹굴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어버이날인 8일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부모님께 최고의 어버이날 선물을 했다"고 기뻐했다.

최광희는 "아직도 챔피언전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또 경기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그처럼 사력을 다한 챔피언 결정전이었다.

최광희는 9일 후배들과 숙소 근처인 수원의 한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12일 V-리그 폐막식장에 입고 갈 봄 옷을 사기 위해서였다. 쇼핑 비용은 김형실 감독이 줬다. 출장비를 아껴 쓰고 남은 돈이라고 한다.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광희는 "내년 V-리그를 2연패한 뒤 최초의 여성 배구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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