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부담 큰데 … 대박 난 전형료로 대학은 ‘해외관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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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 사립대의 입학관리 담당자 A씨는 지난해 4월 8박9일의 일정으로 그리스와 터키에 다녀왔다. 전국대학입학관리자협의회가 주최한 해외연수였다. 20여 개 대학의 입학업무 담당자와 교육 관련 정부기관 관계자 등 27명이 참여했다. 연수 목적은 그리스 아테네 대학과 터키 이스탄불 공대를 방문해 선진 입학전형시스템을 살펴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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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A씨는 “일정 중 대학 방문 시간은 단 3시간뿐이었다”고 말했다. 아테네대는 휴일이 겹친 탓에 방문 일정이 취소됐고 터키에서만 짧은 방문이 이뤄졌다. 나머지 일정은 그리스의 유명 신전 방문과 크루즈 탑승 같은 관광으로 채워졌다. A씨는 “참가 비용은 대입 전형료 수입에서 충당했다”고 밝혔다. 한 달 뒤에는 다른 대학의 입학관계자 43명이 같은 목적으로 9일간 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역시 관광이 대부분이었다.

국회 김세연(한나라당) 의원이 15일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대학으로부터 제출받은 대입전형료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해당 해외연수에 참여한 40개 대학 중 국립대 19곳과 일부 사립대가 비용을 전형료 수입에서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낸 전형료를 관광성 해외연수에 쓴 것이다. 국립대 중에는 인천대(2억700여만원)·부산대(1억9000여만원) 등이 포함됐다.

1인당 평균 연수비용은 380만원이었다. 2명이 참가한 경북대는 ‘대학입학전형 관계자 국외연수 경비’ 명목으로 757만원을 지출했다. 연수 비용을 아예 회의비 항목에 포함시켜 놓은 대학도 있다.

사립대 20곳도 해당 연수에 참여했다. 이들 대학은 전형료 수입을 전체 교비 예산에 합쳐서 쓰는 경우가 많아 서류상으로는 전형료로 연수비용을 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대학 관계자는 “처리 방법만 다를 뿐 사립대 중에서도 연수비용을 전형료로 충당한 곳이 꽤 있다”고 말했다.

관광이 대부분인 탓에 연수 보고서도 부실했다. 보고서 중 체코의 교육제도에 대한 내용은 해당 대학 홈페이지나 백과사전을 거의 그대로 베낀 수준이었다. 또 해외 대학을 방문해 한 질문도 ‘한국인이 몇 명인가’ ‘대학 내에 언어 연수프로그램이 있는가’ 등 입학 전형과는 관계없는 내용이 많았다. 김세연 의원은 “대학들이 전형료로 관광성 해외연수를 다니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8일 시작된 2011학년도 수시모집의 경쟁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대학들의 올해 전형료 수입은 한층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205개 4년제 대학의 수시와 정시 전형료 수입은 모두 1575억원에 달했다. 수시모집이 확대되고 수시 1·2차 복수지원이 허용되면서 수험생들의 전형료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형료는 평균 7만~8만원이고 10만원이 넘기도 한다.

서울 광영고 장은조 교사는 “수시 전형료로만 최대 200만원까지 쓰는 학생도 있다”며 “대학들이 전형 절차를 간소화하고 지원 횟수를 제한해 전형료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사는 또 “ 대학들이 전형료 수입의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과부 관계자는 “선진 입학과정을 배우기 위해 연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내년부터는 국·공립대는 전형료 수입에서 연수 비용을 지출하지 못하게 하고 사립대에도 같은 방향으로 행정지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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