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교등급제’ 첫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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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가 2009학년도(현재 대학 2학년) 수시모집 일반전형에서 고교별 학력 차이를 점수로 반영해 정부가 금지한 ‘고교 등급제’를 사실상 적용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고 일반고·특목고·자율고 등 고교 다양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학교별 학력차를 반영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어서 대입 자율화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창원지법 제6민사부(재판장 이헌숙 부장판사)는 15일 2009학년도 고려대 수시 2-2 일반전형에 응시했다 떨어진 전국 수험생 24명의 학부모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학교 측은 위자료 700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려대가 의도적으로 일류고 출신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고교별 학력차를 반영한 점이 인정된다”며 “이는 시험이나 입학전형의 목적, 관계법령에 비춰볼 때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부당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고려대는 지원자들의 출신 학교 평균점수와 표준편차를 전체 지원자의 평균이나 표준편차에 비추어 다시 표준화하는 방법으로 보정했다”며 “실제 전형 결과에서도 내신 1, 2등급의 지원자가 탈락하고 내신 5, 6등급의 지원자가 다수 합격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는 해당 전형에서 생활기록부 교과 영역 90%, 비교과 영역 10%를 반영해 모집 인원의 15~17배를 1단계로 선발했다. 1단계에서 떨어진 수험생들은 지난해 3월 17일 “내신성적이 더 우수한 학생이 탈락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며 1인당 1000만~3000만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고려대 정진택 대외협력처장은 “판결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고 수긍할 수 없어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2013년 이후 ‘3불 정책’(본고사·고교 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폐지를 비롯한 대입 자율화를 추진한다는 현 정부의 계획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주목된다.

고교등급제 관련 판결 요지

고려대가 의도적으로 일류고 출신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고교별 학력차를 반영한 점이 인정된다. 이는 시험이나 입학전형의 목적, 관계법령에 비춰볼 때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부
당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경우에 해당돼 위법하다


창원=황선윤 기자,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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