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선발 재량권 어디까지 … 다시 불붙은 ‘고교등급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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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에서 고교별 학력차가 반영됐다고 인정한 법원의 판결이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 선발권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고교 간 학력 격차가 분명한 상황에서 이런 현실을 반영한 대학의 입시 전형 방법을 법원이 문제 삼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큰 축인 ‘대입 자율화’ 정책과 이번 판결이 충돌한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올해 수시 입시에서 전국 4년제 대학이 전체 모집인원의 15%를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해 고교별 우대 논란이 재현될 경우 대입 제도의 공정성 논란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고려대가 2009학년도 입시에서 특목고 등을 우대하는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입시 자율화 논란이 쟁점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최로 고려대에서 열린 올해 서울지역 수시모집 설명회 모습. [뉴시스]

◆입시 자율권 논란=재판부는 “대입 전형에서 고교별 학력 차이에 따라 점수를 환산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입에서 자율성보다는 공정성에 더 무게를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고교등급제를 금지하고 있는 법률 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학 입학생의 선발에 관한 규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담겨 있다. 여기엔 ‘논술고사 이외의 필답고사(본고사)를 보려는 대학에 대해 정부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35조2항)’라는 조항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2008년 6월 삭제됐다. 정부가 고교등급제를 금지해왔던 근거는 대입 전형 기본계획이다. 기본계획은 행정부처의 지침 수준일 뿐 법적인 효력은 없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이재교 변호사는 “특목고 내신 5등급 학생과 면 소재지 학교 내신 5등급 학생의 학습 능력을 같다고 보는 게 오히려 차별”이라며 “다른 것을 다르다고 본 것에 대해 불법 행위로 판단한 재판부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 정부는 2009학년도부터 대학입시를 대학에 환원했다.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사법부가 대입에 개입하는 게 옳으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대학의 학생 선발권도 충분히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대학 입학사정관제 실시 2년차인 올해 이후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입시 결과를 놓고 소송이 나올 수도 있다. 양정호 대교협 대입전형실장은 “점수 1, 2점 차이보다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공부하고 비교과 활동을 해왔는지 평가하자는 게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라며 “학교 간 학력 격차가 심한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점수로 뽑으면 저소득층·서민층에게 더 불리한 제도”라고 말했다.

조효완 은광여고 진학교사(전국진학지도교사협의회 회장)는 “실질반영비율 같은 입시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공정성 논란이 생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무슨 일 있었나=2009학년도는 대학 입시 업무가 정부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로 이양된 ‘대입 자율화’ 첫해였다. 대학마다 입시 전형을 다양화한 가운데 고려대 수시모집 2-2 일반전형에 고교등급제가 적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반고에서 최상위권인 교과성적 1등급 학생은 탈락했는데, 내신성적이 하위권(7등급)인 특목고생은 합격했다는 사례들이 수험생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온 것이다. 일부 외국어고에서는 100명이 넘는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는 “학교별로 시험의 난이도와 변별력 차이가 있으므로 내신성적을 고려대의 기준에 수정해서 반영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고려대 입학처장이 “입시 일정이 빠듯해 내신성적 산출 공식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해 오류를 범했다”고 고백해 논란은 더 커졌다. 고려대는 의혹에 대한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대교협이 고려대 손을 들어주자 탈락한 수험생과 고교 교사들은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고려대는 재판 과정에서도 내신성적 산정 방법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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