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내 맘대로 베스트 7] 주인공보다 빛난 조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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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김형석 영화 칼럼니스트

7 ‘만남의 광장’의 류승범

이 영화를 안 본 사람들 중 간혹 가다 “류승범이 주인공인 영화?”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비중이 느껴진다. 거의 카메오에 가까운 출연 분량으로 그가 만들어낸 임팩트는 대단하다. 더욱 놀라운 건, 산 속에서 쭈그려 앉아 구시렁대는 원맨쇼가 그가 보여준 연기의 거의 전부라는 사실.

6 ‘세븐 데이즈’의 박희순
이미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였지만, 박희순에게 ‘세븐 데이즈’는 도약대와도 같은 영화였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가장 진부한 캐릭터 중 하나인 ‘건들거리는 비리 경찰’ 역할에 독특한 말투와 애드리브(즉흥연기)로 생기를 불어넣은 건 박희순의 힘. 그러면서 김윤진의 원톱 주연 영화는 묘하게 김윤진·박희순의 투톱 영화처럼 변해갔다.

5 ‘살인의 추억’의 박노식

이 영화의 모든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향숙이? 향숙이 예뻤다…”라는 대사로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신인 배우 박노식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전국적으로 향숙이 열풍을 일으킨 백광호 역의 박노식은, 캐릭터나 배우의 이름 대신 ‘향숙이’라는 극중 대사로 기억되는 기현상을 낳기도. 이후 그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4 ‘구세주’의 김수미

사실 ‘구세주’만이 아니다. 조연으로 출연한 모든 코미디 영화 속에서, 김수미의 존재감은 영화를 덮었다. ‘오! 해피데이’처럼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마저, 인터넷엔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만 담은 동영상이 돌 정도였다. 거친 입담과 무표정이 빚어내는 독보적 아우라. 섬뜩한 유모로 등장한 ‘구세주’는 그 정점이었다.

3  ‘웰컴 투 동막골’의 강혜정

분량으로 보면 조연이지만, 우린 이 영화를 “마이 아파~”의 강혜정으로 기억한다. 머리에 꽃을 꽂은, 전쟁터에 피어난 순수의 결정체였던 여일. 그녀가 죽는 장면은 전쟁의 비극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이미지였다. 이 영화로만 세 개의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2 ‘타짜’의 김윤석

조승우·백윤식·김혜수·유해진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김윤석은 스테레오 타입이 될 수도 있었던 ‘잔인한 도박꾼’ 캐릭터를 영화의 가장 날 선 이미지로 끌어올린다. 이후 ‘아귀’는 악역의 대명사가 됐고, 김윤석은 고공 비행을 시작했다.

1 ‘넘버 3’의 송강호

영화 ‘넘버 3’의 송강호

이젠 전설이다. 헝그리 정신과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한 송강호(조필)의 한마디 한마디는 한국 영화에서 전무후무한 화법이었다. 영화가 나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성대모사의 대상이 될 정도. 더 놀라운 건, 그 장면들이 NG 없이 한 번에 촬영됐다는 사실이다. “잠자는 개한테는 결코 햇빛이 비추지 않아!” 그의 대갈일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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