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주적' 뺀 국방백서 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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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주적'이란 표현이 삭제된 국방백서가 4일 발간됐다. 국방부는 '2004년 국방백서'에서 기존 백서의 "주적인 북한"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군사력의 전방배치 등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변경했다. 주적 표현은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들어간 이후 10년 만에 사라졌다.

국방부는 "세계적으로 국방백서에 '적'을 명시한 사례가 없고, 남북 교류협력과 군사적 대치를 병행하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과 이중성을 감안해 주적 표현 삭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또 "북한 역시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적대적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점이 감안됐다"고 말했다.

주적 삭제와 함께 이번 백서의 '북한의 대남정책'에서는 2000년 백서의 "북한의 한반도 적화전략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결정적 시기가 조성되면 북한은 군사력을 무력혁명의 주력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부분도 빠졌다. 대신 "군사적 신뢰 구축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완화됐다.

백서에선 또 처음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등장했다. 백서는 "미국은 기존의 '고정배치 기지' 개념을 '유동배치 기지' 개념으로 전환하며 해외 미군 기지를 재조정하고 있다"며 "주한미군도 이러한 개념 아래 재조정이 추진 중"이라고 알렸다. 해외미군 재배치구상(GPR)은 "해외 해군.공군기지를 중추 기지로 확보해 유사시 언제 어디서든 분쟁 지역에 전투력을 신속 투입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이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을 한반도 방어를 전담하는 고정군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역할을 확대하는 유동군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백서는 북한이 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이전에 추출한 10~14㎏의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1~2개를 제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2000년 백서의 "한두기의 초보적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에서 더 나아간 것으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높였다.

◆ 주적 개념 사라지면=국방부는 주적 표현이 삭제된다고 실제 주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해 만든 작전계획 등의 각종 대북방어전략이나 무기 구매 등의 중기 전력투자계획 등에선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장병 교육이나 군 내부 문서에서도 '북한은 주적' 표현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시각에선 주적 표현 삭제가 대북 군사 대비태세와 국민의 안보의식 이완을 가져오는 상징적 계기가 될까 우려한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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