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 性본능설 vs 性교육설

중앙일보

입력

내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폭증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어 정부에서 한 집에 둘만 낳기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였고, 그 시책에 호응해 나의 모교 비뇨기과 교실은 정관수술 연구와 보급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날 다산이 사회시책의 핵심으로 변한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국면이었다.

당시 홍보요원들이 정관수술이나 난관결찰술(卵管結紮術)을 권하면서 겪는 가장 답답한 상황은 변변한 수입도 없으면서 자식만 쉬지 않고 출산하는 흥부 같은 샐러리맨들이 “저 먹을 것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할 때다. 이런 고루한 사고방식은 섹스에서도 맥락을 같이해서 나타난다. 즉 성교육은 굳이 시키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저절로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이른바 본능설의 주장이 그것이다.

무지하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것이지만, 그들은 섹스를 처음 경험하는 여성들에게 그런 편견이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며 정신적 부담을 안겨주는 행위인지를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나도 임상의(臨床醫)로서 그런 사례들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정신적 손상 사례는 초야 출혈이 없다는 이유로 처녀성을 부정하는 남편의 경솔함이었다. 이런 몰지각하고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평생 불감증이나 냉감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여성들을 부지기수로 보았다.

결혼을 앞둔 신랑 후보들이 알아둘 것은 초야 출혈이 그다지 신빙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남성들, 특히 무식한 남편들이 신경 쓰는 첫 성교에서의 출혈에 대해 일본의 한 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출혈이 이틀 동안 계속된 경우가 가장 많았고 하루 동안만 있었던 사람이 그 다음, 그리고 사흘간 지속한 여성이 세 번째, 출혈 유무가 불분명했던 경우가 네 번째 순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출혈 유무에 따라 처녀인가 아닌가를 판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다. 출혈 없는 초교(初交)가 전체의 15%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두 번의 성교로 처녀막이 완전히 파열, 탈락하는 것도 아님을 밝혀냈다.

한 번 정도의 ‘전과’는 남성이 초야에 즈음해 여자의 가슴에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성심리 구축작업’에 나태하거나 사랑의 대화와 부드러운 애무를 생략한 채 마구잡이로 삽입할 때 그 신체적 손상에 의해 출혈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처녀가 아니더라도 출혈한 케이스들이다.

이처럼 거친 초야 행위는 여성의 성기에 물리적 상해를 가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깊은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 마디 또한 성애 분위기를 망쳐놓는다. 이는 여성에게 회복 불능의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히고, 그 결과 노이로제나 정신장해를 야기한다.

F 레즈니크가 그린 풍자화 중에는 ‘교수님의 신혼여행’이라는 표제가 붙은 그림이 한 점 있는데, 침실에서 잠옷 바람의 신부를 앞에 두고 엄숙한 표정의 교수님이 성공적인 섹스를 위해 성교육 교본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유화다. 이 그림은 거액의 상금이 걸려있는 기전(棋戰)에서 바둑돌 하나를 놓는데 신중을 기하는 기사(棋士)처럼 섹스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섹스가 주는 정신적 피해를 설명하기 위해 섹스를 하지 않으려고 4년째 병석에 누워 있는 어느 가련한 여성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결혼 첫날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슬금슬금 배 위로 올라와 성행위를 하는 남편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끝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이틀째 되는 날 밤, 똑같은 방법으로 접근하는 남편을 뿌리쳤다.

아무런 애정 표현 없이 달려드는 그의 무성의에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야 비로소 다정한 말을 해주어 기쁜 마음으로 섹스를 했다. 그리고 출혈이 있었지만, 나는 그때 행복감을 느꼈다.’

독자 여러분도 성교의 과학이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이제 어렴풋이 헤아렸을 것이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854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