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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어린이도서관서 인형극 공연하는 외국인 아줌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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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글=박정식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인형극 보여주고 사진·자료 활용해 각 나라 알려

일본인 안도 유미와 스기모토 가요, 이란인 메헤란(왼쪽부터)이 서울 모두도서관에 모였다. 이들이 직접 만든 인형을 들고 다음 달 인형극 공연에 보여줄 표정 연기를 연습하고 있다. [최명헌 기자]

이들의 공연 횟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30여 차례. 지난해보다 배나 늘었다. 누덕누덕 꿰맨 헝겊 인형에, 인형 움직임도 서툴고, 발음도 어색하지만 앙코르가 끊이질 않는다. 이들은 이웃 도서관들을 비롯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각종 다문화교육 공공기관,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행사 등에 단골로 초청받는 인기 극단이 됐다.

처음엔 다문화 아동을 대상으로 만든 도서관 내 한 독서강좌(‘엄마나라 동화여행’)에 불과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 부모 나라의 모국어를 잊지 않게 하려는 방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다양한 외국어와 외국 문화를 체험하는 교육으로 입소문을 타게 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어린이들에게 외국의 역사와 문화에 쉽고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는 법을 고민하다 인형극을 착안했다.

주부 송유선(38·서울 이문동)씨는 “외국인 엄마들의 서툰 한국말이 오히려 이웃처럼 정감 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가까이서 다양한 문화를 체감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치켜세웠다. 아이와 함께 공연을 본 주부 하정연(30·서울 휘경동)씨도 “베트남 전래동화가 우리나라 동화와 많이 닮아 놀랐다”며 “문화는 다르지만 마음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단원들은 공연을 통해 각국의 문화예술 전령사로 변신한다. 공연시간은 10분 남짓. 몽골·베트남·이란·일본·인도네시아·중국·필리핀 등 13명이 모국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며 자국의 전래동화를 들려준다. 간단한 인사말이나 재미있는 표현은 모국어를, 전체 줄거리는 한국어를 섞어 쓰며 인형극을 선보인다. 공연 뒤 10분 동안 사진과 자료를 보여주며 자국의 문화·전통·생활양식 등을 설명한다. 이어 그 나라의 전통놀이를 함께 즐기며 교감을 나눈다.

박동수(12)군은 “이란이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친구 나라로 느껴졌다”며 이란 아주머니의 맛깔 나는 동화구연 솜씨를 칭찬했다. 극단을 초청해 공연을 본 서울 규전유치원 신윤하 교사는 “단원 중 한 명이 우리 반 학부모였다”며 “엄마가 외국인이어서 친구를 낯설게 여겼던 아이들이 공연을 본 뒤 교우관계가 좋아지게 됐다”고 전했다. 도서관과 극단 운영을 담당하는 푸른시민연대 김정연씨는 “나라와 생김새는 다르지만 비슷한 문화와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게 된다”고 평했다. 이어 “아이들이 ‘틀림’이 아닌 ‘다름’을 배우며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어 능력 높이고 자녀에게 모국의 문화 전수

인형극단 활동은 외국인 주부들에게도 많은 변화를 줬다. 더 가깝게 가족과 교감하고 한국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가 됐다. 그간 몇 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늘 한국에 대한 낯섦이 남아있었다. 그러다 인형극을 하면서 이방인의 느낌을 차츰 지울 수 있었다. 그 빈자리를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보람과 당당함으로 채우게 된 것이다.

스기모토 가요(38)씨는 일본인이다. 한국에서 8년 동안 살았지만 한·일 간의 역사가 들춰질 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는 “일본을 나쁜 나라로만 보는 한국인에게 일본을 제대로 알리고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밝은 내일을 설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인형극 단원이 된 동기다. “일본 동화를 잘 전달하려고 고심하다 보니 관객인 한국인 아이들과 엄마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아들 서정군도 유치원에서 엄마의 인형극을 본 뒤 친구를 사귀는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엄마의 인형극 연습을 보며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게 됐다.

베트남 주부 레티 뒈한(37)씨는 인형극을 하면서 한국어를 터득하고 사회생활도 활발해졌다. 한국말로 쓴 대본을 교정받고, 발음도 연습하면서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고쳤다. 말과 손발이 따로 놀던 모습도 바로잡았다. 자신감을 얻게 되면서 한국인들과 많이 만나고 교류도 많아졌다.

그에겐 특히 딸의 변화가 가장 큰 성과였다. 딸은 엄마의 인형극 팬이 되면서 이를 화제로 엄마와 대화가 늘고 정서적 교감도 많아졌다. 레티씨는 “동화구연 연습 때 상황별로 다른 발음을 고쳐주며 코치까지 할 정도로 애정을 보여주고 응원도 해준다”고 말했다.

몽골 새색시인 볼로르토야(32)씨는 “딸과 함께 인형극 연습도 하고 몽골어로 된 동화책도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도 여느 다문화 가정처럼 한국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모국 문화를 잃어가는 자녀를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모국어를 통한 정서적 교감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 도서관을 이용하고 인형극단에서 활동하면서 고민을 벗을 수 있었다. “몽골에 관한 동화를 읽고 인형극을 관람하면서 몽골 문화를 알려줬더니 아이가 모국인 몽골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몽골에도 ‘여우와 두루미’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아이와 함께 인형극 대본으로 쓰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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