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nline] 교육 패러디 '학교대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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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록부 - 학생들의 신체적.지적.사회적 발달상황과 발달에 작용되는 제반 조건 또는 환경에 관한 정보를 일정기간 연속적으로 체계있게 기록한 장부'.(네이버 백과사전)

#'생활기록부 - 학생들의 온갖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어 미사여구로 수식된 대학에 보여주기 위한 대외용 문서. 예)잠이 많다 → 과묵함, 문제아 → 활발하고 교우관계가 좋음'(2005 학교대사전)

▶ 교칙 - 교사들의 모든 비합리적인 언행을 정당화 해주는 수단. 급식- 가장 싸면서도 위험한 식사. 공동화 현상 - 점심시간에 급식으로 교실이 텅 비게 되는 현상.

온라인 상에서 10대들이 만든'그들만의 사전'이 화제다. 최근 익명의 고교생들이 만든 교육 풍자 사이트'2005 학교대사전'(myhome.naver.com/ssanzing2). 교육 현실을 촌철살인의 풍자로 꾸민 일종의 '패러디 사전'이다. 여기엔 학교에서 흔히 쓰이는 352개의 단어 해설에 속담.인물.시편까지 붙어있다. 사이트는 지난달 25일 문을 열었는데 불과 일주일 새 16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다녀갔다. 운영자들은 "연습장에 끄적거리던 것을 어느 날 온라인에 옮겼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내친김에 출판까지 할 생각이다.

학교대사전은 입시에 찌들어 참교육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사전은 '질문'을 '수업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교사에게 말을 거는 행위'로 풀이한다. 교실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수재의연금은 '매년 되풀이되는 수해의 복구비용을 정부가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며 교육부는 '주로 여러 가지 황당한 정책을 발표하거나 조령모개로 정책을 바꿔 일선 교사들과 학생들을 당황시키는 업무를 하는 곳'이란 뜻이다.

전교조도 이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전은 '일부 열성 전교조원은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고 학교 밖으로 나가서 수업을 빠뜨리기도 한다'고 꼬집는다.

네티즌들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통쾌하다'고 말한다. 한 고교생은 게시판에 "100% 공감한다. 책으로 발간해서 교육부장관에게 보내줘야 한다"는 격려의 글을 남겼다. 한 네티즌은'내신관리'라는 단어를 추가,'부모가 힘 있거나 빽 있는 경우 가능한 일'이라고 적어 놓았다. 교사가 현직검사 자녀의 시험답안지를 고쳐 써 준 최근의 사건을 풍자한 것이다.

걱정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교육과정이 7차까지 변했는데 왜 학교는 달라지지 않았나"라며 암울한 교육현실을 안쓰러워했다. 한 교사 지망생은 '많이 웃고 공감했지만 우리 교육의 실상이 드러나 있는 것 같아 씁쓸하고 절망감도 든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나 운영자들의 사전편찬(?) 의도를 보면 희망도 보인다. 서문에 '미래의 학교는 지금과 달랐으면 한다'고 적었는데 여기엔 풍자가 풍자로 끝나지 않고 참다운 교육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10대들의 바람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글=조민근 기자<jmi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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