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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수퍼박테리아가 주는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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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수퍼박테리아란 말은 학술용어가 아니다. ‘살 파먹는(flesh eating)’ 박테리아를 이렇게 부르던 언론이 독성이 몹시 강한 균도, 항생제 내성이 뛰어난 균도 수퍼박테리아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요즘 학계에서는 이런 균들에 대해 수퍼박테리아 대신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란 뜻에서 ‘다제(多劑)내성균’이라고 부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항생제에 듣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수퍼박테리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균은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이다. 이 균은 흙이나 하천 등에 서식하며, 건강한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못하는 독성이 약한 균이다. 그러나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침투하면 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다제내성균은 25년 전 영국에서 발견되었고, 1990년대 들어 미국의 여러 병원에서 집단적으로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세균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섭씨 90도가 넘는 온천수에도, 기압이 엄청난 심해에도, 산소가 전혀 없는 곳에도 산다. 이런 세균들이 항생제를 극복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항생제 가운데 내성균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항생제를 쓰지 않는 병원이 있다면 모를까, 내성균이 없는 병원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병원이 속수무책이란 말은 아니다.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면 내성균의 출현 시기를 더 늦출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지 말고, 수술 감염의 예방 목적으로 투여하는 항생제의 사용 기간을 줄여야 한다. 병원에 내성균이 출현하는지 감시하고, 내성균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격리 시설도 갖춰야 한다. 병원 감염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의료인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보험은 의료 관련 감염 관리, 특히 감염 예방에는 매우 취약하다. 감염이 발생해서 여기에 쓴 항생제 값은 인정하지만, 의료 관련 감염 예방에 필수품인 소독제 구입비는 인정하지 않는 식이다. 일본 국민들과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점은 균 자체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내성균 출현 사실을 수개월 동안 모르고 있었고, 사실 인지 이후 확산을 막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지, 사실 파악 후 신고까지 수개월이 걸린 까닭을 따지고 있다.

항생제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이며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소중한 자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항생제 오남용을 막고 병원감염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게는 다제내성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남은 항생제마저도 듣지 않는 진짜 수퍼박테리아가 출현하여 우리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대한감염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