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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딛고 서울대 합격한 두 수험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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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두 장애우 수험생이 서울대에 나란히 합격했다.

악보를 읽을 수 없어 음계를 통째로 외워가며 노래 연습을 해온 청년은 음대생이, 학교 수업 내용을 전혀 듣지 못했던 다른 청년은 미대생이 됐다. 지난 1일 정시모집 합격 통보를 받은 두 주인공은 안종묵(24.(左).인천시 주안동)씨와 이동엽(20.서울 구파발동)씨.

성악과에 합격한 안씨의 시야는 1m에 불과하다. 가까이 있는 사물의 존재는 확인할 수 있지만 시력검사표에 있는 가장 큰 글씨도 읽을 수 없다. '망막색소변소증'이라는 4000명에 한 명꼴로 나타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 병은 어려서는 문제가 없다가 15~20세 때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해 상당수가 40세쯤 실명하는 형태로 진전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조금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별도의 뜻을 두고 만드신 일이라고 받아들였어요." 안씨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별도로 확대 복사한 책을 만들어 공부해야 했다. 악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고교 때 품은 성악가의 꿈은 접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인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경기도의 한 대학에 3학년까지 다녔던 안씨는 "좀더 좋은 학교에서 공부해보자"는 생각에 다시 시험을 보게 됐다. 안씨는 "팝페라의 선구자로 불리는 시각장애인 안드레아 보첼리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사랑해주고 아껴주신 부모님, 친구들, 선생님을 생각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미대 디자인학부에 입학한 이씨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두 살 때 열병을 앓으면서 청력을 잃어 버렸다. 힘겹게 말은 하지만 의사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씨는 "보통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의 뜻에 따라 초.중.고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마쳤다. 수업 내용은 전혀 듣지 못했지만 선생님 및 친구들과 주로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며 힘겹게 학교 생활을 했다.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특히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교내.외 미술대회에서 숱하게 상을 받았다.

아버지 이준영(66)씨는 아들을 대신해 "도와주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범하게만 자라줘도 고마운데 이런 기쁨을 안겨줬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씨의 담임인 서울 대성고 강석주 교사는 "반에서 공부도 1등이고 미술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미술 전문학원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며 "집중력이 워낙 뛰어나서인지 학원에 1년도 채 안 다니고 미대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인 이씨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2일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홍주희.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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