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이어 이산상봉 … ‘천안함 탈출’ 교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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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도적 문제를 앞세운 북한의 대남 평화 공세가 거세다. 10일에는 추석(9월 22일)을 계기로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벌이자는 제안을 해 왔다. 지난 4일 쌀을 포함한 대북 지원을 요구했고, 오징어 채낚기 어선 대승호와 선원 7명(한국인 4명, 중국인 3명)을 억류 한 달 만인 8일 풀어 줬다. 이런 제안과 움직임은 북한 조선적십자회가 대한적십자사에 통보하는 형태로 이뤄져 ‘인도주의’를 강조한 듯하다. 정부 당국자는 12일 “우리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점은 북한이 향후 인도적 사안을 내세워 남북 관계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북측의 파상적 움직임은 일단 수해를 계기로 대북 지원을 확보하려는 유화 제스처로 볼 수 있다.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이 “상봉을 계기로 북남 사이의 인도주의 협력사업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한 대목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이런 실리적 목적 외에 3월 말 발생한 천안함 사태로 인한 대북 압박·제재 국면을 탈피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수해 지원이나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한 남북 접촉을 통해 ‘천안함 가해자’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얘기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대승호 선박 등의 조치로 대북 비난 여론을 무마시켜 나가려는 치밀한 전술이 읽힌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진단이다.

천안함 사태에 대응한 정부의 5·24 대북 교류·지원 제한조치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 재산인 금강산 면회소에 대해 지난 4월 동결·몰수조치를 취하는 등 거칠게 나왔던 북한이 태도를 돌변,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것에 대해 정부가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남북 간 교감에 의한 것이란 관측도 제기한다. 북한의 유화전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난달 중국 방문 이후 나왔고, 이명박 대통령이 7일 러시아 국영TV와 인터뷰에서 ‘제2개성공단’ 문제 등을 언급했다는 측면에서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남북 간 8월 중순 비밀 접촉설’을 보도한 12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를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하는 등 물밑 움직임 가능성을 부인했다.

정부는 북한의 제안에 원칙적으로 호응하되 구체적 실무협의 과정에서 우리 요구를 반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추석 계기 등 일회성이 아니라 정례화의 기틀을 잡겠다는 복안이다. 북한이 기분 내킬 때 1년에 한두 차례 100명씩 만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1988년 이후 상봉을 신청한 12만8129명 중 지난달 말 기준으로 34.7%인 4만4444명이 사망했다”며 정례화와 규모 확대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대북 지원도 수해 긴급구호에 필요한 라면 등 비상식량과 생필품·의약품은 중국 단둥(丹東)을 통해 비 피해가 심한 신의주 등에 신속히 보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쌀의 경우 한적의 대북 지원 제안액인 100억원 규모 안에서 국내산을 상징적 규모로 시행하고 구매 절차 등을 고려할 때 시간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거듭된 정부의 통지문 늑장 공개=통일부는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 통지문을 10일 접수하고도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11일 오전 10시까지 숨겼다. 앞서 북한의 쌀 요청 통지문을 통보 사흘이 지난 7일 뒤늦게 공개했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도 사흘 만에 잘못을 되풀이한 것이다. 국민에게 투명한 남북 관계 추진을 공언했던 이명박 정부가 몇몇 고위 당국자의 정보 독점과 비밀주의 때문에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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