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바꿔 찾은 ‘1000개 직업’ 로드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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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못난이’ 사과 한 개를 1000원에 드립니다.”

못난이 사과는 태풍·폭우 등 자연재해로 흠집이 생겨 제값을 받지 못하는 사과다. 당도는 일반 사과와 차이가 없다. 하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잘 거래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대학생들이 나섰다. ‘빛트인(Between)’이란 이름의 사회적기업이다. 정천식(23) 빛트인 대표는 “농촌과 도시 사이(between)를 좁히자는 뜻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며 “떨이로 팔던 사과의 새 판로를 확보하게 된 농민과 값싼 사과를 찾는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세상을 바꾸는 1000개의 직업’ 행사에 참석한 주부 김미정씨(왼쪽)와 딸 조소빈양(왼쪽 둘째)이 사회적기업인 ‘터치포굿’에서 만든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터치포굿은 폐현수막 등을 재활용해 패션소품을 만드는 회사다. [최승식 기자]

11일 낮 12시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빛트인 같은 ‘사회적기업’ 일자리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세상을 바꾸는 1000개의 직업’ 행사다. 이날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7시간 동안 치러진 행사에는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 방송인 김제동씨 등이 강연을 통해 일자리와 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원순 이사는 “주위를 둘러보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적기업 일자리가 많다”며 “청년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 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주목받은 것은 친환경 일자리다. 폐가를 활용한 민박업, 폐현수막을 활용한 의류업, 바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바다 환경 미화업 등이다. 친환경 추세가 확산할수록 인기 있는 일자리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박 이사는 강연에서 “국내에서도 몇 곳은 이미 성공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친환경 상품뿐 아니라 친환경 일자리가 주목받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왔다. 강연자로 나선 김제동씨는 “열심히 공부해 스펙(취업 자격요건)을 쌓아야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맞다”며 “다만 ‘꿈 너머의 꿈’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에 참석한 유학생 전강희(22·여)씨는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행사장 밖에는 사회적기업을 소개하는 부스가 차려졌다. 못난이 사과를 파는 빛트인 부스 외에도 잡지 판매를 노숙인에게 맡기는 ‘빅이슈’, 가난한 커피 생산 국가 농민에게 제값을 주고 커피를 만드는 ‘아름다운 커피’ 부스 등에서 손님을 맞았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 선영숙(44)씨는 “평소 사회적 일자리에 관심이 많아 아이 둘을 데리고 교육차 들렀다”며 “아이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정해진 길을 걷기보다 남과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기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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