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G20 정상회의 의장국의 영예와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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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하지만 G20의 출범은 세계사가 겪고 있는 전환기의 격동과 3년째로 접어든 국제적 금융 위기의 직접적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심장부 월가(Wall st.)로부터 시작된 금융대란이 순식간에 세계경제를 불황의 격랑 속으로 삼켜버리면서 유일 초강대국 시대의 막이 내려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선진 7개국, 즉 G7만으로는 전 세계를 휩쓰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 이미 정치와 경제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을 포함한 새로운 세력 판도를 반영하는 협의체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자명한 결론과 광범위한 국제여론에 힘입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그 20개국에 우리 한국이 포함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반영하는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한국이 지닌 잠재적 힘과 가능성을 오바마를 비롯한 세계의 지도자들이 감지하기 시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이 의장국이 된 서울 G20 정상회의는 그러한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잠재적 역할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느냐 하는 시험의 장(場)이 될 것이다.

우리가 준비하고 주재하는 G20 서울회의는 두 개의 역사적 과제를 처리해야 한다. 첫째, 세계경제가 당면한 불황, 침체, 파탄의 위기를 극복하려 그동안 네 번의 정상회의를 통해 합의한 일련의 공동 대처 방안을 최종 확정하고 이의 집행 절차도 결정하는 것이다. G20의 위상이나 정체성의 확보는 무엇보다 먼저 당면한 경제위기를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극복하느냐에 달렸으므로 서울회의는 그에 대한 첫 시험인 셈이다. 의장국으로서 국제경제의 기득권 세력이라 할 수 있는 G7 국가들과 중국, 인도를 비롯한 신흥세력 간의 입장 차이를 조율하고, 국제금융기구와 관행의 획기적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이 결코 수월치 않음을 감안할 때 교량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한국의 책무는 여간 막중한 것이 아니다.

둘째, G20이 과연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느냐 하는 대표성의 논란도 적절히 처리되어야만 정상회의의 정체성이 확보될 수 있다. G20에 포함되지 않은 172개 국가들과 수많은 국제기구들의 입장을 어떻게 서울회의로 연계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우리 정부는 G20 담당 대사를 임명하는 등 비(非)G20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진력하고 있지만 대표성을 포함한 여러 차원에서의 국가 간 불평등 문제는 갈수록 심각성을 더하여 가리라 예상된다. 한편, 대표성의 문제에 못지않게 G20에 대한 비판적 국제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초점은 후진 지역 혹은 발전도상국의 사회 및 경제발전에 대한 진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비판은 비G7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G20 의장국을 맡은 한국에 대한 발전도상국들의 기대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일념으로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온 나머지 후진국들의 경제발전엔 응분의 관심을 쏟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한국을 수많은 발전도상국들과 국제단체들이 지구촌의 공정한 발전의 기수(旗手)로 추대하겠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인간개발을 포함한 복지사회 건설 등 여러 면에서 발전의 모범이라는 과대평가가 G20 의장국이란 위상과 겹쳐져 국제사회에서 널리 통념화되고 있다. 한국이 주재하는 서울 G20 회의가 후진국 발전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란 국제적 기대는 이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맞은 이 역사적 기회와 도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정말 남에게 모범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공동체적 자성과 각오를 새롭게 해야 되겠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