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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제 살리자더니 웬 개헌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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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개헌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당리당략을 떠나 개헌 문제에 대한 연구도 진척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지도부가 공개석상에서 개헌론을 거론한 것이 처음이기에 주목을 끈다. 그러나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느닷없이 개헌론을 끄집어낸 것은 부적절했다.

우선 시기적으로 옳지 않다. 올해는 경제와 민생 살리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대표 모두 "경제에 올인 하겠다" "올해를 무정쟁의 해로 삼자"고 다짐한 바 있다. 김 대표도 '민생을 살리기 위해'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 과거사법 등 쟁점 법안 처리를 일정 기간 유보하자고 제의하지 않았던가. 그래 놓고 쟁점 법안보다 훨씬 더 휘발성이 강한 개헌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치가 과열되면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게 뻔하지 않은가.

물론 개헌논의 자체를 무조건 봉쇄하자는 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반성에서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책임제, 책임총리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고,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나 정.부통령제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와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춰 선거 횟수를 줄임으로써 국력의 낭비를 막자는 의견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도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이 참에 손볼 건 모두 손보자'며 온갖 의견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차기 대선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합종연횡이 난무할 게 뻔하다. 대통령 5년 임기 중 아직 2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후계니 차기니 한다면 남은 기간이 정치논쟁으로 소모될 수도 있다.

개헌 문제로 세월을 보낼 만큼 올해는 한가하지 않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이다.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작은 징후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판국이다. 개헌논의를 하려면 경제가 되살아났다는 확신이 설 때 하라. 그것도 소모적 논쟁을 최소화하고 최단 시간 내 끝내야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