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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양성애…모든 금기에 도전하는 컬트의 원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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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객석을 박차고 일어나 무대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다-.’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관람한 소감이다. 감미로운 발라드와 강한 비트의 록음악이 잘 어우러져 음악적으로 즐거웠다는 점도 한 이유일 것이다. 경쾌한 춤과 빠른 장면 전환도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록키호러쇼가 우리를 무대 속으로 유혹하는 가장 큰 매력은, 해괴망측한 사회적 금기사항들을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뮤지컬은 오랫동안 ‘엽기’와 ‘황당’이라는 단어로 요약돼왔다. 실제로 ‘컬트’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도발적이고 발칙한 내용 때문이다. 길을 떠난 젊은 남녀가 빗길에 자동차가 고장 나자 도움을 구하러 들어간 고성에서 겪는 기기묘묘한 소동이 줄거리다. 누가 봐도 선남선녀인 자넷과 브래드 커플은 고성의 주인인 프랭크와 마주친다. 큰 키에 능글맞은 미소를 던지는 남자. 그런데 복장은 란제리 룩이다. 세상에, 망토를 제치자 대님 달린 가터벨트를 맨 망사 스타킹에 코르셋 차림이 드러난다. 입술은 붉게 반짝인다. 얼굴의 메이크업은 진하다 못해 ‘덕지덕지’라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다. 말 그대로 트랜스젠더풍이다.

주인의 파티에 초대받은 남녀는 근육 투성이의 인조인간 탄생, 잔혹한 전기톱 살인 등 온갖 황당한 일을 겪는다. 눈으로만 겪는 게 아니다.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주인과 근육맨 록키의 유혹 속에 남녀는 온몸으로 성적인 경험까지 하게 된다. 한쪽으로 보면 욕망의 제물이 된 것이지만 달리 보면 성적인 즐거움을 솔직히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무대는 만만치 않은 하드코어로 넘친다. 트랜스젠더, 란제리룩, 양성애, 근육 숭배, 잔혹 등등 말초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코드들이다.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가치전복적인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요소를 버무려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즐기는 것은 관습을 파기하는 괴기스러움이자 금기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다. 이러한 괴기스러움은 1973년 6월 19일 런던에 있는 60석짜리 로열코트 소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던 이 작품이 37년이 넘도록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2010년인 지금도 충분히 충격적인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을 70년대에는 얼마나 큰 파문을 불러왔을까. 그 파문은 장기 공연과 함께 ‘컬트’화로 이어졌다.

컬트가 되어버린 뮤지컬
이 작품은 런던 초연 이듬해인 74년 중간급 규모의 극장으로 무대를 옮겼으며, 이듬해 미국 LA를 거쳐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십 개 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 75년에는 ‘록키호러 픽처쇼(RHPS)’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됐다. 이 영화는 컬트 영화의 대명사로 불린다. 지금도 미국 뉴욕의 맨해튼 12번가 빌리지 이스트 극장, 로스앤젤레스 UCLA 인근의 누아트 극장, 샌타모니카의 래믈 극장 등 젊은 문화 중심지에서는 주말에 심야 상영되고 있다. 런던에선 프린스찰스 극장에서 최근까지 심야 상영됐다. 심야 상영은 관객 참여의 공연 형식으로 이뤄진다.

극본을 쓴 영국 극작가 리처드 오브라이언은 유명한 만화출판사 마블 코믹스의 만화문화를 뮤지컬로 옮겼다. 프랑켄슈타인·외계인·트랜스젠더·복장도착증 등 다양한 B문화(하급문화)의 요소를 작품 속에서 패러디했다.

흥겨운 엔터테인먼트가 되어버린 컬트
그런데 시대는 흘렀고, B문화는 이제 돈을 모으는 흥행 아이템이 됐다. 마블스 코믹스에서 냈던 만화의 상당수는 할리우드 주류 영화 소재가 됐다. 컬트가 주류 엔터테인먼트의 핵심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울에서 본 ‘록키호러쇼’는 이제 온화한 주류 엔테테인먼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경쾌함과 유머가 넘치는, 즐거운 공연 말이다. 컬트가 관객에게 친근한 공연으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다시 서울로
이 쇼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네 차례에 걸쳐 한국어로 라이선스 공연이 이뤄졌다. 이번에 서울 공연을 펼치는 팀은 처음으로 영어 공연을 한다. 호주에서 꾸린 팀이다. 눈여겨볼 점은 주인공 프랭크 박사 역을 후완 잭슨이라는 이름의 흑인 배우가 한다는 점. 커다란 키의 이 배우가 킬힐에 란제리 룩으로 등장하면 무대에 카리스마가 넘친다. 두툼한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록키호러쇼 서울 공연의 백미다. 뮤지컬이 끝날 때쯤 커다란 눈, 두툼한 입술, 능글맞은 표정의 이 배우가 좋아지는 것은 왜일까.

아울러 내레이터 역을 맡은 한국인 배우(홍록기·박준규·김선경·예지원·이선균·오만석이 매회 교대로 등장)의 감초 역할에도 눈길이 간다. 그 능청맞은 표정과 목소리 연기, 물 건너온 오리지널 공연팀에 절대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이 마음에 든다. 10월 10일까지 서울 코엑스 아티움.

글 채인택 기자 ciimccp@joongang.co.kr
사진 ㈜쇼드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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