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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룰 짓밟은 강성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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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 1일 밤 노사정 대화 복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임시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직후 한 대의원은 이렇게 개탄했다. 폭력사태로 얼룩진 이날 대의원대회를 지켜본 많은 사람은 회의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강성 노조에 대해 "민주노총을 무너뜨리려는 불순한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전경련이나 정권의 끄나풀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대의원 대회에서 드러난 과격 노동운동 세력의 행태는 그야말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단상을 점거하고 욕설과 야유를 보내며 주먹다짐을 서슴지 않는 모습은 정치권의 구태보다 한술 더 뜬 난장판이었다.

복귀 반대세력의 대회 방해는 처음부터 고의적이었다. 그들은 표결 처리를 무산시키기 위해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운동권 학생들까지 동원했다. 이들은 대회 시작부터 회의장 뒤편에서 이수호 위원장 등 집행부에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표결에 들어가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게 뻔하니까 아예 판을 깨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저놈 생긴 게 원숭이 같네" "노빠(노무현 정권 지지파) 같은 놈" 등의 막말이 터져나왔다. 사진기자들에게 "이거 다 찍어. 어차피 '나가리'될 텐데"라며 언론을 의식한 노골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집행부가 표결 처리를 시도하자 이들은 단상을 점거한 채 시너를 뿌리는 등 극렬한 행동을 보였다.

한 대의원은 "어떻게 의견이 다르다고 동지들에게 위해 행위를 할 수 있는가"라며 혀를 찼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비교적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행사해 왔다. 도덕적 정당성과 민주적 의사 결정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산하 조직인 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 비리로 도덕적 정당성이 훼손된 데 이어 이날 폭력사태로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원칙까지 무너졌다. 목표가 다르면 동지도 서슴없이 공격하는 과격성을 지켜보며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정철근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