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 '모스크바 회동' 이뤄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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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의 잇따른 부인에도 불구하고 계기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든다.

올해엔 특히 남북 정상이 만날 수 있는 다자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려 이를 무대로 한 정상회담설이 증폭되고 있다.

◆ 거듭되는 정상회담 초대=청와대는 "모스크바 제2차 세계대전 전승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남북 정상이 만날 가능성은 검토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변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호스트인 러시아의 의중이다.

김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대에 응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남북 정상이 모스크바에서 만나게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면 교환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초청받은 정상 대부분이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 측의 참석 여부는 러시아가 적절한 시점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한 점도 정상회담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반론도 거세다. 우선 김 위원장이 그동안 한번도 다자회담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사에 참가해도 얻을 만한 소득이 예상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빛나는 호스트' 역할을 할 수 있는 모임도 아니다. 때문에 명목상의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참석시킬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그럴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김영남 위원장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정상회담은 아니다.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장이 지난달 31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북한이 APEC에 참여할 수 있다면 6자회담 당사국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셈"이라면서 "한국은 핵을 포기한 북한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 서고 싶다"고 한 말이 근거다.

그러나 북한은 APEC 회원국이 아니다. 비회원국 정상이 APEC에 초청된 전례가 없어 현재로선 부산 정상회담 가능성은 작다.

◆ 압박과 유인=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가능성이 계속 거론되는 배경에는 정부가 남북관계의 획기적 돌파구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물밑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란 분석과 기대가 깔려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여권이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순조로운 듯했던 남북관계는 지난해 중반 이후 얼어붙었다. 정부는 개성공단 준공 등을 통해 미소를 보냈고, 탈북자 대거 입북에 대해 사과성 발언 등을 하면서 북한을 달랬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냉랭했고 6자회담 진전도 없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해야 할 때가 됐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지난 1월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언제 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대가 응한다면 주제와 관계없이 정상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유연한 입장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란 조건과 '북핵문제 해결 이후'라는 단서를 모두 제거한 것이다.

결국 정상회담 가능성을 연상시키는 최근의 행사와 발언은 '대북 압박과 유인'을 동시에 겨냥하는 계산된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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