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밤길 무서워서 가격 공개 못한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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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런 발상에서 나온 게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aT)의 농수산물 가격 공개였다. 재래시장과 마트·인터넷쇼핑몰·직거래장터의 상품별 가격을 비교해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이 보고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도 “품목별 최적의 구매 시점과 장소를 조사해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초의 취지는 처음부터 빛이 바랬다. aT가 구체적인 장소는 비공개로 한 채 시장과 마트·인터넷·직거래장터별 평균 가격만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도 이를 승인했다. aT는 “업계 반발이 심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구체적인 사례도 들려줬다. 지난해 11월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가격을 조사해 공개했더니 비싼 곳으로 지목된 매장에서 항의전화를 걸어 와 일을 못할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밤길 조심하라” “가족들 조심하라”는 협박도 받았단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은 어떤가. 지역별로 마트와 시장은 수십 개가 넘는다. 단순히 “시장이 마트보다 평균적으로 싸다”는 정보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재래시장보다 싼값에 물건을 내놓은 마트가 있어도 전체 마트의 평균 가격이 높다면 실제와 달리 비싼 곳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마트가 가격 경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평균 가격 뒤에 숨어 옆 마트를 비슷하게 쫓아가는 게 낫다.

주부들은 매일 신문에 끼워져 오는 마트 전단지를 열심히 뒤진다. 조금이라도 싸게 판다는 세일정보나 할인쿠폰을 얻기 위해서다. 인터넷 쇼핑족들도 주문하기 전에 가격비교 사이트부터 들른다.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구매를 위한 준비가 다 돼 있다. 다만 정보가 부족할 뿐이다.

목숨의 위협까지 느낀다는 aT 직원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뛰는 물가로 고통받는 서민을 위한다면 수집한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누군가 그에 반발해 협박한다면 사법당국이 나서서 보호하고, 공갈범을 엄하게 처벌하면 된다. 공권력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와 aT는 서민의 고통보다 업자의 협박이 더 무서운가.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