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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만화 속 그 음식, 끄집어내 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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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일식당 ‘아카사카’ 후쿠다 다카노리(44)셰프, 중식당‘더 차이니즈 레스토랑’전극인(46) 셰프, 베이커리‘델리’박규봉(56)·비트 로펠(51) 파티시에, 양식당‘파리스 그릴’조용석(44) 셰프가 흔쾌히 나섰다. 만화 속 주인공들을 감동시켰던 그 음식들은 그들의 손끝을 타고 책 밖으로 나왔다.

글=이상은 기자 coolj8@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1 날개 달린 만두
‘맛 좀 봐라’ 3권

물10에 밀가루1 비율로 만들어야

1 전극인 셰프가 물과 밀가루의 황금비율로 만들어낸 날개 달린 만두.『 맛 좀 봐라』-테라사와 다이스케 (코단샤). 2 밥과 면과 만두가 모두 어우러진 군만두면. 전극인 셰프 작품이다.『 맛의 달인』-카리야 테츠·하나사키 아키라 (쇼가쿠칸).

소년원에서 출소한 대식가 카이는 푸드 프로듀서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1차 목표는 일본 고베 시내 슈에이빌딩 56층‘맛의 월드’에 중화요릿집을 내는 것. 입점을 위해선 정통 중화요리사 소우스케와의 군만두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 상어지느러미로 ‘왕후 귀족의 만두’를 만든 소우스케에게, 카이는 서민을 위한 ‘싸고 맛있는 만두’로 맞선다. 일명‘날개 달린 만두’. 사람들은 만두에 달린 날개의 바삭함에 놀란다. 바삭한 날개의 정체는 ‘밀가루 푼 물’.

●전극인 셰프 “비율이 중요해요. 물10에 밀가루1로 섞었더니 맛있는 날개가 되네요.”만두를 굽다 반쯤 익으면 밀가루 푼 물을 붓는다. 그리고 재빨리 뚜껑을 덮는다. 만두의 윗부분은 수증기로 인해 촉촉해지고, 아랫부분엔 물기가 증발해 구멍이 송송 뚫린 바삭한 밀가루 날개만이 남는다. 단, 책에선 “만두의 양쪽 끝을 틔우면 만두 속 육즙이 날개에 배어 맛있어진다”며 일부러 양 끝을 틔웠지만 현실에선 붙였다. “그럴 경우 정작 만두 속은 육즙이 다 빠져나가 푸석해진다”는 것이 전 셰프의 설명. 만두의 날개는 과자처럼 바삭했다.

2 군만두면
‘맛의 달인’81권

군만두 살짝 데쳐 쫄깃, 의외로 담백

절대미각을 타고난 기자 지로는 길에서 만난 도시오(남편), 교우코(아내) 부부와 친해진다. 그런데 도시오와 교우코의 부모, 즉 양가 사돈은 앙숙이다. 양쪽 노인 모두‘나만 옳다’는 고집쟁이다. 도시오의 아버지는 군만두라이스를 질색한다. 밥을 곁들이는 것은 만두에 대한 모독이라 믿는다. 교우코의 아버지는 완탕(중국식 만두)면을 무시한다. 완탕에 면을 곁들이는 것을 못 참는다. 지로는 그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다. 그것은 바로 ‘군만두면’. 군만두 속에 밥을 넣고, 탕면 위에 얹은 요리다. 군만두·밥·면. 즉, 그들이 섞어 먹길 거부한 음식들을 조화시킨 것이다. 완고한 노인들은 군만두면을 통해 자신의 생각만 고집한 점을 반성하고 화해한다.

●전극인 셰프 “중국 현지에도 없는 특이한 음식이네요. 이름만 듣고는 누구도 선뜻 못 먹을 거예요.”그러나 실제 군만두면의 맛은 선입견을 깼다. 쫄깃한 군만두 피, 그 속의 쫀득한 밥알, 국물 속 부드러운 면이 조화롭다. 의외로 느끼하지도 않다. 비법은 군만두를 살짝 데친 뒤 올리는 것. 전 셰프는 “군만두를 데쳤더니 기름기도 빠지고 유부처럼 쫄깃해졌다”고 알려준다. 국물은 닭·오리·돼지의 뼈와 살을 고아 진한 맛을 냈다.

3 새까만 초밥
‘미스터 초밥왕’ 전국대회편 7권

흑색 아닌 갈색 … 맛 평가는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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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쇼타는 초밥의 달인 심태랑을 상대로 도미 대결을 펼친다. 쇼타가 만든 것은 ‘새까만 초밥’. 심사위원들은 “저게 무슨 초밥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입안에 넣자마자 “제발 한 개만 더!”를 외친다. 그리고 “쓴맛과 떫은맛이 섞인 농축된 맛에 반했다”고 말한다. 쇼타가 재료를 공개하자 그들은 경악한다. 도미의 뼈와 머리를 갈아 만든 초밥이었기 때문. 쇼타는 버려지는 부분을 재활용한 것이었다.

●후쿠다 다카노리 셰프 “일본 요리 26년 만에 이런 초밥은 처음입니다.” 그의 소감이다. 먼저 도미 뼈와 머리를 솥에 넣고 푹 끓였다. 비린내를 없애려 사케도 넣었다. 흐물흐물해진 뼈와 머리를 갈았다. 빵가루·전분·마요네즈·계란 흰자와 반죽해 접착력을 키우고, 모양을 잡기 위해 살짝 구웠다.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완전히 새까만 색은 나오지 않았다. 갈색이었다. 맛은 독특하다. 푸아그라나 파테(동물 간을 갈아 만든 프랑스 요리) 같은 감촉 속에서, 중간중간 뼈 알갱이가 씹힌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갈릴 만한 초밥이네요. 제가 심사위원이라면, 쇼타에게 맛에선 낮은 점수를 주고 기상천외한 발상에만 높은 점수를 줄 겁니다.”

4 오므라이스 속 오믈렛
‘맛의 비밀노트’ 3권

지단·밥·수란 놓고 돌돌, 신선한 맛

‘엘비스’는 일본 도쿄의 100년 전통 양식당이다.‘엘비스’의 신참 신타로는 최고의 양식요리사를 꿈꾼다. 엘비스를 집어삼키겠단 욕망으로 들어온 요리사 조는 “시시하다”며 채소 썰기 수행을 거부한다. 주방 사람들은 조에게 “신타로와의 오므라이스 대결에서 이기면 채소 썰기를 면제해주겠다”고 한다. 조는 치킨라이스 위로 치즈가 녹아내린 화려한 오므라이스를 만든다. 반면 신타로가 만든 것은 못생긴 뚱뚱이 오므라이스. 그러나 반으로 자른 순간, 탄성이 터진다. 오므라이스 속에서 또 다른 달걀이 툭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얇고 단단한 바깥쪽 계란, 그 속의 밥, 밥 속의 걸쭉한 계란으로 이뤄진 오므라이스였다. 신타로의 오므라이스가 뚱뚱한 이유는 3중 구조였기 때문이다.

●조용석 셰프 그는 은근히 까다로워 보이는 이 ‘오므라이스 속 오믈렛’을 가뿐하게 완성했다. 그가 떠올린 비장의 아이디어는 수란. 수란은 달걀을 흰자만 익히고 노른자는 액체 상태로 놔둔 것이다. 먼저 프라이팬에 지단을 부치고 그 위로 밥을 편다. 밥 위로 수란을 얹고 지단을 돌돌 말면 끝. 수란 만들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끓는 식초물(물 400mL에 식초 한 큰술 비율)에 계란을 깨 넣고 10초 안에 꺼낸다. 이 오므라이스의 또 다른 포인트는 토마토소스다. 토마토 페이스트에 다진 마늘을 섞어 만든 소스는 상큼함을 더한다. 조 셰프는 “신선한 달걀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호텔 아침 메뉴로 판매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5 녹색 거북이빵
‘따끈따끈 베이커리’5권

녹차 반죽 구우니 갈색, 그 속은 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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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가즈마는 일본 최고의 베이커리‘빵타지아’에 입성하기 위해 빵 경합에 나간다. 상대는 코알라 가면을 쓰고 나타난 미지의 제빵사. 그는 용 모양의‘용빵’을 만든다. 용빵을 맛본 심사위원은 이소룡이 되어 날아간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려 구운 아즈마의 작품은 ‘녹색 거북이빵’. 그 놀라운 맛에 심사위원은 우주 괴물 가메라가 되어 포효한다. 빵은 구우면 갈색이 되는데, 녹색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 아즈마는 비결을‘낮은 온도에서 오래 굽기’라고 밝힌다.

● 박규봉·비트 로펠 파티시에 밀가루 반죽 512g에 녹차가루 400g을 넣었다. 녹차 냄새가 진동하는 진녹색 반죽을 거북이 모양으로 빚었다. 머리·꼬리·발은 따로 빚은 뒤 계란물을 묻혀 몸통에 붙였다. 아이싱(설탕으로 만든, 양과자 재료)에 녹차가루를 듬뿍 섞어 등껍질도 만들었다. 완벽한 녹색 거북이였다. 2시간 발효시키고 140도 오븐에서 20분간 구웠다. 그러나 오븐 속에서 나온 것은, 갈색 몸통의 거북이였다. 아이싱으로 만든 등껍질만 그대로 녹색이었다. 박 파티시에는 “ 밀가루 반죽은 저온에서 구워도 갈색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녹차 쉬폰케이크나 녹차 카스테라는 왜 녹색이냐”고 묻자 “겉면을 벗겨내는 거다. 이 빵도 속살은 녹색일 것”이라고 했다. 몸통을 잘라보니 정말 녹색 속살이 보였다. 박 파티시에는 “20년 전만 해도 이런 거북이빵이나 악어빵, 뱀빵 같은 동물 빵이 인기였다. 만드는 데 오래 걸려 이젠 자취를 감췄지만 요즘 어린이들도 좋아할 것 같다”며 “내년 어린이날엔 이 거북이빵을 팔아 대박 내야겠다”며 웃었다.



셰프들, 처음엔 당황했다 끝에는 즐거워했다

처음 만화책을 보여줬을 때 셰프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결과적으론‘오므라이스 속 오믈렛’처럼 아이디어 하나로 쉽게 성공한 경우도, 그 반대도 있었다. ‘새까만 초밥’은 후자다. 후쿠다 셰프는 만드는 내내 “머리와 뼈로 만든 초밥은 만화니까 용납된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내 요리 인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이 도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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