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골프 ‘명예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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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인비테이셔널 한·일 프로골프 대항전은 양국의 자존심을 건 샷대결이다. 한·일 대항전은 올해 대회가 초대 대회나 마찬가지인데 미국과 유럽 선수들이 필드에서 대결을 펼치는 라이더컵과 닮은 꼴이다.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을 건 라이더컵은 세계 최고의 골프 이벤트로 자리매김 했다. 라이더컵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가 팀 승리를 기원하며 동료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중앙포토]

라이더컵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일 대항전의 미래가 보인다. 라이더컵은 1927년 시작됐다. 26년 브리티시 오픈을 앞두고 미국과 영국 선수들이 친선 경기를 한 데서 유래했다. 27년 이 경기를 정례화 시키고 새무얼 라이더라는 사람이 트로피와 상금을 기부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라이더컵이라는 대회가 됐다. 초창기엔 미국과 영국의 대결이었고 이후 아일랜드까지 포함됐다. 79년 미국 대 유럽으로 확대되면서 대륙 대항전이 됐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지만 구대륙-신대륙, 전통-현대의 대결이라는 상징적 성격 때문에 골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팀 경기다.

라이더컵은 유럽에서 올림픽, 월드컵, 유럽축구 선수권 다음으로 큰 스포츠 이벤트다. 최고 골프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 챔피언십 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 유럽과 미국이 맞대결할 만한 스포츠는 골프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유럽 여러 나라가 하나의 팀으로 뭉쳐 나가는 대회도 라이더컵이 유일하다. 유럽 통합을 위해 유럽 정부와 미디어는 정책적으로 라이더컵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라이더컵 초창기엔 양팀이 팽팽한 경기를 했는데 2차 대전을 겪는 동안 영국의 프로 골퍼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서 종전 이후엔 미국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47년에는 미국이 11대1로 이기기도 했다. 79년 유럽 대륙으로 확대되면서 다시 막상막하의 게임이 됐다.

유럽은 20세기 후반 강세를 보였다. 개별 선수의 수준으로 보면 미국이 훨씬 뛰어난데 라이더컵에서 미국 선수들은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미국이 유럽에 참패를 당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타이거 우즈의 등장과 함께였다. 특히 우즈의 시즌 개인 기록이 매우 좋았던 2004년과 2006년 미국은 참혹하게 졌다. 2006년 유럽은 10점 차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우즈의 라이더컵 기록은 10승2무13패에 불과하다. 매치 플레이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우즈의 승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필 미켈슨도 10승6무14패로 라이더컵에서 약했다.

라이더컵에는 상금이 없다. 명예를 걸고 출전하는 것이다. PGA 투어의 어마어마한 상금에 맛들인 미국 선수들이 명예를 중시하는 이 대회에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세계랭킹 1위를 지낸 데이비드 듀발(미국)은 “PGA가 라이더컵으로 큰 돈을 벌면서 선수들에겐 왜 돈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을 했다가 골프팬들로부터 “애국심도 없는 배부른 돼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미국 선수들은 이런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상이다.

유럽팀 주장을 맡았던 이언 우스남(영국)은 ‘룸서비스 플레이어’ 이론을 편다. 한때 PGA 투어에서 뛰었던 그는 “미국 선수들은 기량도 뛰어나고 열심히 연습하지만 전세기를 타고 다니면서 호텔에 틀어박혀 혼자 룸서비스 음식을 시켜먹는 등 조직력이 모래알 같다”고 했다. 반면 유럽 선수들은 한데 어울리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형제애를 나눈다.

라이더컵은 주장과 선수 등 모두 12명씩 출전하며 사흘간 28경기가 매치플레이로 열린다. 이긴 팀은 1점, 비기면 0.5점을 받아 14.5점 이상을 얻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비길 경우 전 대회 우승팀이 컵을 계속 간직해 실질적으로 이긴 것이 된다. 첫날과 둘째 날은 팀 경기 16경기가 열린다. 일반적으로 오전에는 포볼 방식 네 경기, 오후에는 포섬 방식 네 경기씩이 열린다. 마지막 날에는 싱글 매치 12경기가 벌어진다. 경기 포맷은 몇 차례 바뀌었는데 1979년 현재의 얼개가 만들어졌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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