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년 전 시작된 한민족의 북방 역사,중국 역사로 편입 시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2호 20면

요하 홍산문화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3500년 여신 얼굴상

“늑대는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북방 속담이다.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뛰는 늑대는 북방 민족의 자유롭고 강인한 열정, 혼의 상징이다. “초원에선 평온함 뒤에 평온함이 없고 위험 뒤에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고 한다. 신바람과 피와 눈물의 땅이다. 우리 문화의 원형은 그 땅에서 시작됐다. 잊혀졌던 그 북방 DNA의 원형을 뜻밖에 비디오아트스트 백남준(2006년 사망)이 부활시켰다. 1963년 독일의 파르나스갤러리에서 개최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은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선보이는 자리. 그는 이 전시회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소머리를 내걸며 “짐은 곧 황색 공포(yellow peril)”라고 했다. 즉 ‘오늘날의 예술은 백남준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메시지였다. 황색 공포는 칭기즈칸을 상징했다.

백남준은 생전 “내 예술세계의 출발은 북방문화 원형”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아예 로제타-돌비석을 패러디한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95년)’에 “나는 내 핏속에 흐르는 시베리안-몽골리안 요소를 좋아한다”고 새겼다. 북방문화 원형에서 출발한 그는 꾸준히 세계 통합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과 통합됐다.

백남준이 몰두한 북방 DNA는 인류사에 빛을 남긴 존귀한 이념의 원천이다. 역대 북방 민족들은 사상적으로 ‘만물은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자연법적 인식체계, 정치적으로 ‘직접 참여주의를 통한 권력 분립’, 경제적으로 ‘교역 중시의 철학’을 만들어 냈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꿈’이다. 이로 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에는 우열이 없고 오직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거란제국이 등장했고 “조화와 융합을 통한 혼혈잡종문화”의 이상을 추구한 대몽골제국이 건국됐다. 또 고조선 및 흉노 이래 역대 북방제국들의 길도 북방 DNA에 대한 검증과 실현과 좌절의 역사였다. 우리는 고구려의 멸망 이래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우리 몸속에 흐르는 북방 DNA로 인해 오늘의 번영을 일궈 냈다.

지금은 한민족 5000년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대다. 이를 유지하려면 북방DNA의 지혜가 필요하다. ‘교역 중시’ 지혜는 오늘날 해외 진출과 교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세계를 넓게 다녔던 북방 선조들의 밝은 눈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지식인이 우리에겐 그런 종합전략이 없음을 지적한다. 북방DNA가 쓴 역사는 우리의 국혼이 돼야 한다.

그런데 새롭게 발견되는 고대의 문화, 한반도의 선조들이 만들었음이 뚜렷한 북방문화를 중국이 가로채고 있다. 요서문화ㆍ홍산문화에는 웅녀가 있고 환웅이 있고 고조선이 있다. 탐원공정은 ‘현재 중국 땅에 있는 문화는 무조건 중국문화’라는 논리로 역사를 비튼다. 동북공정 시대보다 훨씬 커진 대국 중국은 한민족의 역사를 송두리째 가져가고 있다. 뿌리 없는 민족은 역사의 부평초다. 잠든 북방 DNA의 영혼-홍익인간을 불러내 국가의 이념을 넘어 21세기 인류의 이념으로 제시해야 한다. 북방 DNA의 부활이 기대되는 시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