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아이들, 요리사로 키우는 음식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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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베트남 하노이에는 ‘거리의 아이들’이 주인인 레스토랑이 있다. 강가에서 노숙하며 코코넛을 팔아 생계를 잇던 아이들은 이곳에서 새 삶을 찾아 나간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코토(KOTO). ‘한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을 가르쳐라(Know One, Teach One)’를 줄인 말이다. 지난 2일 만난 창립자 지미 팜(38·사진)은 “거리의 아이들을 만났을 때 단순히 먹여주고 재워주는 자선을 베풀지 말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제작소와 인텔아시아가 공동 주최하는 ‘2010 아시아 NGO 이노베이션 서밋’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팜은 한국의 노숙인 자활사업도 코토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부가 일정한 정책을 수립해서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숙인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팜은 원래 호주의 관광회사에서 근무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던 자유인이었다. 그가 자신의 고향인 베트남에 다시 돌아온 것은 1996년이었다. 어릴 때 호주로 이민을 간 이후 20여 년 만이었다. 출장차 하노이에 들렀던 그는 거리에서 먹고 자는 아이들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마약에 중독돼 있었고, 성매매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처음 4년은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했다. 주변에 기부를 받아 먹여주고 재워주는 쉼터를 운영했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쳤다. 아이들은 다시 거리로 돌아갔다. 그때 아이들에게 단순히 먹을 것을 줄 게 아니라 먹고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깨달았다. 첫 시작은 직원 9명이 운영하는 샌드위치 가게였다. 주변에선 거짓말만 할 줄 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겠느냐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열심히 일했다. 가게는 번창했다. 1년 만에 코토 레스토랑을 창업했다. 팜은 더 많은 아이들을 모아 숙식을 제공하고 식당일을 가르쳤다. 2년 동안 교육을 마친 아이들은 유명 호텔 식당에 취업하는 등 일자리를 찾아 나갔다.

단순한 직업교육만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인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거칠고 싸움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대화와 봉사를 가르쳤다. 또 형제자매의 관계를 맺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서로 신뢰관계를 쌓자 이들은 강력한 팀워크를 발휘했다. 올해로 창립 10년을 맞은 코토를 거쳐간 아이들만 400명이다. 대부분 취업에 성공했다. 지금도 100여 명의 아이들이 코토를 이끌어가고 있다.

팜의 한국 이름은 문영철이다. 1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지어줬다. 2~3년에 한번씩 꼭 한국을 찾는다. 경남 마산의 아버지 산소에 성묘하고 고모와 고모부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코토 같은 레스토랑을 한국에 차려 사회적 기업으로 성공시키는 것이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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