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주니 정말 고맙지. 잘해야 할 텐데….”
지난달 31일 대구시 화전동에 있는 음악감상실 녹향에서 이창수(왼쪽)씨가 박영호 대구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의 반주에 맞춰 ‘대구시민의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이씨는 4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2010 대구음악제’ 무대에 선다. 그가 출연하는 행사는 ‘코러스 인 대구’라는 주제의 합창제다. 이씨는 독창으로 대구시민의 노래 1절을 부른다. 2절은 20명의 어린이합창단과, 3절은 300명의 대구연합합창단 단원과 함께 부를 예정이다. 반주는 50명으로 구성된 대구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맡는다. 올해 29회째인 이 행사는 대구의 대표적인 음악축제다. 그를 무대로 불러낸 사람은 박영호(51) 대구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이다. 박 감독은 얼마 전 음악감상실에서 이씨가 ‘대구시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목격했다. 이씨는 “참 좋은 노래인데 불리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마침 합창제를 준비하던 박 감독은 이씨에게 출연을 제의했다. 대한민국 제1호 클래식 음악감상실 주인이라는 점이 초청 이유다.
이씨가 녹향의 문을 연 것은 1946년 10월이다. 이곳은 6·25전쟁이 나면서 명소가 됐다. 화가 이중섭(1916∼56)과 시인 유치환(1908∼67)·조지훈(1920∼68)·박목월(1916∼78) 등 피란 문인과 예술인들이 찾았다. 그 뒤에는 예술을 추구하는 학생들이 드나들었다.
박 감독은 “나를 비롯한 많은 음악인이 학창시절 녹향에서 꿈을 키웠다”며 “한평생 ‘문화의 텃밭’을 지켜온 그에게 예술인으로서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방 전 대구역 앞에서 악기사 점원으로 일하면서 클래식에 빠져 들었다. 혼자 노래 연습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도 고려했다는 게 박 감독의 설명이다. 그가 무대에 서면 많은 사람이 힘과 용기를 얻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씨는 나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맑은 목소리에 고음처리도 능숙하다. 웬만한 젊은이 못지 않게 호흡도 긴 편이다. 이날 음악회에는 1000여 명의 관객이 찾을 예정이다.
홍권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