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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사청문회 vs 미국 인사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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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이 앞선 민주주의 국가라곤 하지만 상원의 청문회장을 찾다 보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하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한국 청문회와 마찬가지로 힘을 가진 의원들은 왕처럼 굴고, 인준 대상자는 의원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 여의도 국회에서 사법부 고위직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오전 내내 후보자는 이례적으로 의원들의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지 않았다. 평소 일부 의원들이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총리님’ ‘장관님’ 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았던 나는 이런 모습이 신선했다. 독립성이 가장 중요한 사법부 책임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후 속개된 청문회에선 ‘존경하는 의원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국민의 대표를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호칭 가지고 괜히 의원들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참모들의 건의가 먹혔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인사 청문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퍼스트 레이디와 상원의원을 지낸 거물인데도 발언 때마다 의원들의 ‘사려 깊음’에 깊은 존경을 표했다. “대답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의원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는 말도 여러 차례 이어졌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청문회는 누가 봐도 인준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의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범 답안, “만약 인준이 된다면 의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일해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는 답변이 거의 모든 질문에서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청문회에선 후보자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형제 중에 신부 같은 성직자가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절대로 비슷하지 않다. 겉모습 말고 그 내용면에서 말이다. 한국의 단골메뉴인 위장전입·탈세 등의 불법 행위가 미국 청문회장에서 이슈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결점이 있는 사람은 청문회장에 앉는 일조차 없기 때문이다. 당국의 검증 과정에서 솎아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분수를 알고 물러서는 경우가 더 많다. 지역 기업과의 유착 의혹으로 청문회 전에 상무장관 직을 반납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니 한국처럼 ‘죄송 청문회’는 보기 어렵다.

미국 청문회장에선 해당 업무와 관련된 후보자의 과거 발언과 행적이 가장 큰 현안이다. 후보자가 펼칠 정책의 방향을 가늠해 보기 위함이다. 인사 청문회 전문가인 톰 코롤로고스 전 주(駐) 벨기에 미국대사는 후보자에게 전하는 청문회 십계명 중 하나로 “인준이 되기 전까지는 새 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물러난 자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