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멈췄다” 실시간 트위터 … 태풍이 막은 길 뚫은 I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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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직장인 문지환(27)씨는 2일 태풍 ‘곤파스’로 지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정시 출근에 성공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올라온 교통정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수도권 지하철 운행이 일시 중단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2일 서울 종로구 동묘의 미루나무 두 그루가 도로 쪽으로 쓰러져 인부들이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문씨는 오전 7시 서울 마포구 상수동 집을 나섰다.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접속했다가 “도로가 많이 막히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문씨는 택시를 포기하고 6호선 상수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회사에 가려면 원래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문씨의 스마트폰에 “당산대교에서 2호선이 멈췄다”는 글이 떴다. 그는 합정역을 지나쳐 삼각지역으로 향했다. 4호선으로 환승해 강남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트위터의 도움을 받아 문씨가 회사에 도착한 시각은 8시10분. 그는 “만약 트위터를 보지 못하고 택시를 탔거나 2호선을 탔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태풍 피해가 가장 컸던 이날 오전 트위터·미투데이 등 SNS 사이트엔 ‘태풍속보’가 붙은 글이 수천 건이나 올라왔다.

지난 4월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비행기가 수일간 결항됐을 때 사람들이 트위터·페이스북 등에서 ‘생존방법’을 공유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시 비행편이 결항되자 유럽 사람들은 서로 육로 정보를 나누며 목적지를 찾아갔다.

시민들은 “공사장 가림막이 쓰러져 도로가 잠시 정체됐네요”라는 실시간 상황도 트위터에 올렸다. 김민주(25)씨는 “접촉사고 때문에 두 시간 동안 버스에 갇혀 있었는데, 사람들이 올리는 글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고 안심했다”고 말했다.

태풍으로 생업을 위협받은 사람도 많다. 영등포 청과시장에서 과일 노점을 하는 정순애(75) 할머니는 태풍에 장사를 망쳤다. 할머니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오전 6시쯤 시장에 도착했다. 새벽녘에 거세게 분 바람으로 노점을 덮고 있던 파라솔 6개가 모두 부러져 있었다. 태풍이 온다기에 어제 정성스레 비닐과 끈으로 과일 상자를 묶어 놓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람이 이렇게 세게 불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바닥에는 복숭아가 나뒹굴고 있었다. 어제까지 개당 2000원에 팔던 것이다. 할머니는 복숭아 여러 개를 모아 씻은 뒤 바구니에 나눠 담고 ‘모두 2000원’이라고 쓴 종이를 세워놓았다. 정 할머니는 “하룻밤 사이 100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며 “그래도 과일이 다 떨어졌을 과수원 주인보단 내가 100배는 나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는 오후에 파라솔을 새로 구입했다. 하나에 5만원, 모두 30만원이 들었다.

서울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영 중인 권영(48)씨는 밤새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타워크레인은 100m 높이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강풍을 동반한 태풍에 제일 취약하죠. 만약 사고가 나면 사람들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됩니다.”

권씨는 태풍이 올라오기 전날인 1일 누전을 막기 위해 타워 크레인 전원을 차단했다. 큰 건물에 안전고리를 장착해 크레인을 묶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와이어로 고정돼 있는 타워크레인은 초속 50m 이상의 바람을 견디지 못한다. 강풍이 심하게 몰아치기 시작한 2일 새벽부터 현장 반장들과 수시로 통화했다. 그는 이렇게 밤을 꼬박 새웠다. 권씨는 “올가을에 태풍이 또 온다는데, 밤잠 설칠 날이 여러 번 더 있겠다”며 한숨을 지었다.

글=심새롬·심서현·박정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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