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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산골 봉평에 40만 명 들렀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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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 중 하나일 것이다. 이효석(1907∼42)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 이 문장으로 인해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이맘때면 관광 특수를 누린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기 전, 전국의 관광명소가 숨을 고를 때 봉평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강원도 봉평 땅은 시방 활짝 핀 메밀꽃으로 환하다. 다음주까지가 절정이란다.

1. 효석ㆍ문학 숲 공원에 재현돼 있는 ‘메밀꽃 필 무렵’ 속 장면. 허생원과 조선달이 충주집에 가는 모습이다. 2. 이효석문학관 인근에 고증을 거쳐 복원한 이효석 생가. 3. 소설 속 물레방앗간도 재현해 놓았다.

산허리에 소금을 뿌린 듯이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해마다 40만 명 가까이 이 산골을 찾아 들어온다. 평창군은 지난해 효석문화제 기간 중 약 150억원의 관광 수익을 올렸다.

엄격히 말해 봉평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메밀 산지가 못 된다. 강원도 전체에서 나는 메밀을 다 합쳐야 전국 메밀 생산량의 5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되레 경상도 쪽이 메밀 생산량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봉평 하면 메밀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모든 소란과 착각이 12쪽에 불과한 단편소설 한 편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문학은 힘이 세다. 관광 판도쯤이야 단박에 뒤집는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이용정보 영동고속도로 장평IC로 빠져나와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8㎞ 거리에 효석문화마을이 있다.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문학 숲 공원은 입장료가 있다. 각 2000원. 축제 관련 정보는 이효석문학선양회(www.hyoseok.com, 033-335-2323). 효석·문학 숲 공원에서 산을 향해 난 길을 따라 5∼6㎞ 걸으면 휘닉스파크(www.pp.co.kr)가 나온다. 휘닉스파크가 올봄 조성한 고랭길이다. 휘닉스파크와 이효석문학관 사이에 하루 10차례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다음 달까지 휘닉스파크에서 허브축제가 열린다. 1588-2828.

# 이효석과 봉평

이효석(사진)은 봉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확히 12년을 봉평에서 살았다. 선친이 면장이어서 집안이 유복한 편이었다. 어린 이효석은 집에서 39㎞ 떨어진 평창 읍내 초등학교를 통학했는데, 어린이가 매일 걷기에는 부치는 거리여서 주로 나귀를 타고 다녔다.

봉평면에서 평창 읍내로 가는 길에 대화면이 있다. 이게 중요하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 밤길을 걷는 허생원과 조선달 두 장돌뱅이의 이야기이어서다. 이효석은 어렸을 적 학교를 오고 갈 때 봤던 풍경을 소설로 옮겼다. 메밀밭 지나고 개울 건너며 구경했던 제 고향을 소설에 담은 것이다. 봉평장은 2·7장이고, 대화장은 3·8장이다. 봉평장을 파한 장돌뱅이들이 밤새 걸어 대화장으로 가는 소설 속 설정은 지금도 맞아떨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막 ‘충주집’도 옛 봉평장에서 실제로 영업을 했던 집이다.

여기서 하나. 소설에서 봉평장과 대화장은 ‘칠십 리 길’로 나온다. 28㎞ 거리다. 그러나 지금은 10㎞도 채 안 된다. 봉평과 대화를 잇는 반듯한 신작로가 났기 때문이다.

# 메밀꽃 테마파크

현재 봉평엔 약 33㎡ 면적의 메밀밭이 있다. 하나 봉평의 메밀은 관상용이다. 봉평에 사람이 몰리는 때가 메밀꽃이 필 무렵이어서다. 메밀은 열매를 먹지 꽃은 먹지 않는다. 그래서 봉평의 메밀밭은 기념사진을 위한 관광지다. 메밀밭 복판에 오두막도 지어놓았고, 소설에 등장하는 나귀도 기르고 있다. 곳곳에 물레방앗간도 설치했다. 모두 사진을 위한 무대장치다. ‘메밀꽃 필 무렵’이란 간판을 내건 식당도 있고, ‘동이 민박’ ‘동이 막국수’ 집도 있다.

상술만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이효석문학관은 전시물이 제법 튼실하다.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7월 개장한 ‘효석·문학 숲 공원’도 가볼 만하다. 소설 속 장면을 인형과 세트를 이용해 고스란히 복원해 놓았다. 물론 이효석 생가도 있다. 다만, 생가가 두 개여서 헷갈린다. 원래 생가가 다른 사람에게 팔려 메밀 식당 주인의 사유지 안에 있어, 마을에서 이효석 생가를 옛 모습대로 새로 지었다.

해마다 메밀꽃 필 무렵이면 봉평 주민이 효석문화제를 연다. 올해로 12회째인 효석문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방축제로 자리 잡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명품축제 인증을 받았다. 올해는 3~12일 효석문화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봉평은, 단편소설 한 편의 세계를 재현한 일종의 테마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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