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연암대 귀농지원센터] “귀농의 첫번째 요건은 농촌 지역사회와의 동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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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헌 귀농지원센터장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귀농에 성공한다고 했다. [조영회 기자]

“게을러도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싸가지가 없으면 안 됩니다.” 천안연암대학 채상헌(47) 귀농지원센터장이 말하는 귀농인의 기준이다. 생소한 잣대지만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 귀농인이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있다고 한다. 씨를 뿌리고, 재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도심에 살던 사람들이 귀농해 마을사람들, 지역 농민과 어울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는 마을 잔치마다 돼지를 잡아주면서도 힘들어 그만두고 동화되지 못하는 이들을 봐왔다고 했다. 무조건 베풀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함께 하고, 농민, 농촌의 삶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동네 할머니가 장보러가는 날이면 차를 태워주기도 하고, 마을 품앗이는 물론 동네의 궂은일에 기꺼이 나서야 한다. 조상들이 대대로 만들어 온 농로나 하천 등에 무임승차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경쟁이 치열하다

귀농지원센터는 경쟁률이 8대1, 10대1 정도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빽’을 쓰는 이들도 있단다. 채 센터장은 “삼수생이 생겨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대 등 유수의 대학을 나오고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귀농센터나 원예학과 등에 들어오는 이들 중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크다. 자신이 가르치는 사람의 4분의 1이 만학도다. 이들이 2~3개월 배워놓고 뭣 좀 아는 것 마냥 시작해 망할까봐 걱정이다. ‘섣불리 발을 들였다간 다 털린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자신의 처지가 그랬다. 90년대 중반, 1만500여㎡(3800평)규모에 묘목을 심었다. 나름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에 잘 길러내고, 만족스러울 만큼 키웠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묘목회사 사장과 친분이 있어 판매에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았던 시절은 2년, 더 오래가지 못했다. IMF가 터지면서 묘목시장도 함께 주저앉았다. 친구가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긴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농업을 이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또 다른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지인만 믿었다 낭패를 당한 것이다.

지도자의 고집

예술가의 외모를 풍기는 그에겐 ‘고집’이 묻어난다. 지난해 3월 센터장으로 부임해 학과 홈페이지를 없애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카페(http://cafe.naver.co,/uiturn.cafe)를 만들었다. 이 카페는 6월 현재 4700여 명의 회원에, 하루 평균 500여 명이 방문한다고 했다.

그는 “대학 학과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카페를 들르는 사람들은 많다. 이곳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간”이라고 자랑했다. 그의 고집은 또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 지원자가 많지만 정원을 늘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채 센터장은 “귀농을 하려는 한 사람 한 사람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경쟁률이 치열해도 정원을 늘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붕어빵 찍듯이 수강생을 만들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 것’이란다.

살아있는 교육

귀농지원센터 수업현장. [연암대 제공]

귀농센터 학생들은 농사에 관련된 모든 일을 직접 해본다. 얼마 전에는 학교 내 공터에 비닐하우스를 직접 지었다. 현재 3동이 이번 주 안에 5동으로 늘어난다. 하우스가 완성될 때마다 학생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채 센터장은 “현장에서 열의를 갖고 집요하게 질문하는 ‘귀농학생’들에겐 못 당한다”고 했다. 이 때만큼은 교수들도 사기를 못 친다며 농담했다.

이들이 배우는 하우스에선 농약도 사용한다. 실제 농사를 가르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서 배워 이 곳보다 훨씬 더 크게 사업으로 확대시킨 사람들도 있다.

그는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귀농가구의 대부분은 남자의 의지에 따른다고 한다. 아내는 자연스레 수동적이게 된다. 특히 도시의 교육이나 쇼핑·문화생활에 익숙한 아내에게 일방적인 귀농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배우자의 동의 없이 귀농을 강행하면 부부 갈등만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예산 사과’, ‘청양 구기자’를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길어야 10년으로 내다봤다.

농촌이 젊어져야 계속해서 ‘열매’를 얻을 수 있고, 농촌을 젊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보다 급한 숙제라고 했다.

글=김정규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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