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데이트] 네덜란드 명문팀서 뛰는 조광래팀 막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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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으로 해후한 부자

석현준의 아버지 석종오(47)씨는 1982년 신인왕전에 출전했던 복싱선수 출신이다. 석씨는 운동을 그만둔 뒤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했다. 석현준이 중학 2학년이던 2005년 석씨는 사업에 실패했다. 공장이 남의 손에 넘어간 데 이어 부인과 이혼했다. 아들은 석씨가 맡았다. 생활비가 쪼들려도 석씨는 축구선수가 꿈인 아들에겐 쇠고기를 챙겨 먹였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한밤에 공동묘지에 데려갔다.

대표팀 소집을 하루 앞둔 2일 저녁,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석현준의 집 앞 음식점에서 부자가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 석종오씨(왼쪽) 앞에 놓인 축구화는 2003년 석현준이 유소년대표에 선발돼 일본 대표와 경기를 치렀을 때 신었던 것이다. [오종택 기자]

석씨는 “자정쯤 충주공원묘지에서 3㎞를 볼을 다루면서 걸어 내려오게 했다. 묘지 꼭대기에 미리 휴대전화를 숨겨둔 뒤 확인 전화를 할 만큼 지독하게 시켰다”고 말했다. 석현준은 “그때는 귀신보다 아빠가 더 무서웠고 야속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나를 강하게 키우려 했던 아버지 속뜻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석현준이 입국하던 지난달 30일 아버지 석씨는 인천공항에서 수많은 취재진과 팬이 보는 가운데 아들과 입을 맞췄다. 석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했던 거라 나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자제해야겠다”며 멋쩍어했다.

#아약스가 택한 첫 아시아인

공동묘지 훈련으로 생긴 배짱 덕분일까. 그는 무모하게 도전했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아약스에 입단했다. 잉글랜드 첼시 입단을 시도하다 실패한 지난해 가을, 석현준은 아약스 훈련장을 찾아갔다. 마틴 욜 아약스 감독에게 팬인 것처럼 접근해 사진을 찍고서는 “1분만 얘기할 시간을 달라. 난 한국에서 온 축구선수인데 테스트를 받고 싶다”고 졸랐다. 처음엔 “상해보험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욜 감독은 당돌한 그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며 2군 경기에서 테스트를 받도록 했다. 그는 사력을 다했다. 그런 모습이 2군 코칭스태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몸은 유연하고 빨랐다. 어린 시절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워 신체 밸런스도 잘 잡혀 있었다. 아약스는 1월 그와 입단계약을 했다. 100년 역사의 아약스에선 첫 아시아 선수다.

석현준의 놀라운 유연성을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하루는 훈련 도중 키를 넘는 롱패스가 날아왔다. 대개는 머리나 가슴으로 트래핑하지만 그는 오른발을 어깨보다 높이 치켜들어 공을 멈춰 세웠다. 동료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욜 감독은 이후 그를 ‘브루스 쑥’이라고 불렀다. 쿵후 스타 브루스 리(이소룡)처럼 아크로바틱한 볼트래핑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쑥’은 그의 성인 ‘석’의 네덜란드식 발음이다. 그는 지난 시즌 1군에서 5경기(72분) 출전했고, 2군에서는 9경기에 나가 8골·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올 시즌 개막 직전 열린 첼시와의 평가전에서는 교체 투입 5분 만에 쐐기골을 터트렸다. 욜 감독은 “(석현준은) 16m 안에서는 언제든 슛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또 한번의 신데렐라 스토리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던 순간 석현준은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보며 ‘정말 국가대표가 됐구나’라고 실감했다. 그는 “그렇게 많은 기자는 처음 봤다.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인터뷰 내내 침착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 입소 전날인 2일에는 모처럼 친구들과 영화를 봤다. 그는 “조광래 감독님이 내게 바라는 건 박주영 형을 받쳐주는 역할일 것 같다. 내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석현준은 아직도 성장하는 ‘미완의 대기’다. “대표팀 경험은 없지만 아약스에서 많은 걸 얻었다”는 그는 “내가 가진 걸 모두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시련을 이겨낸 19세 청년은 다부지고 당찼다.

글=최원창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석현준은

■ 출생 : 1991년 6월 29일 충북 충주

■ 체격 : 1m90㎝, 83㎏

■ 출신 학교 : 서울 대동초-백암중-신갈고

■ 현 소속팀 : 아약스(네덜란드)

■ 등번호 : 21번

■ 별명 : 브루스 쑥(발을 높이 올려 공중볼을 잡는 모습이 브루스 리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음)

■ 미니홈피 첫 문구 : 하나부터 다시 시작

■ 취미 : 컴퓨터 축구게임

■ 지난 시즌 기록 : 1군 5경기(72분) 출전, 2군 9경기 출전·8골·2어시스트

■ 주요 경력 : 19세 이하 청소년대표, 20세 이하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 2기 조광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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