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개헌 정말 할 거면 여권 내부부터 의견 조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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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기국회가 개막되면서 개헌이 다시 떠올랐다. 이명박(MB)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개헌 특사’ 격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개헌을 하려면 지금이 적기(適期)”라고 말했다. 개헌추진 의원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내년이 개헌의 마지막 기회”라며 개헌특위 구성을 주장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략적인 게 아니면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저런 주장이 나오지만 개헌의 현실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적잖다. 현 정권 들어 논의가 질질 끌려온 데다 여야는 물론 집권세력 내부터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헌 논의가 국정에 혼란만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므로 차제에 개헌 문제의 커다란 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행 대통령중심제의 권력집중에 따른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은 무성하게 제기됐다. 더군다나 노무현 정부 때 여야는 국민에게 개헌을 약속하기도 했다. 2007년 1월 노 대통령이 4년 중임제 개헌을 들고 나와 논란 끝에 여야 6개 정당이 ‘18대 국회 초반 개헌 추진’을 합의했었다. 현 정권 들어서도 여러 시도가 있었다. 김형오 국회의장 시절 자문위원회는 개헌안을 마련했다. MB는 2009년 8·15 연설에서 개헌과 선거구제·행정구역 개편이라는 ‘국가 틀 개조’ 3대 과제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세종시 파동과 천안함 사태 그리고 지방선거의 물결에 휩쓸려 갔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또다시 여야가 개헌 문제를 들고 나오지만 정말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국민들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다. 현 정부의 임기가 절반을 넘기면서도 개헌 논의가 한 치 진전 없이 표류 중이다. 과연 남은 임기 내 난마처럼 얽힌 정치권의 이해득실을 뛰어넘어 복잡한 개헌 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 회의론이 짙은 것이다. 자칫 구체화하지도 못할 거면서 개헌론을 중구난방 들고 나와 국민들을 혼란케 하고 국가 에너지만 낭비하는 우(愚)를 범할까 두려운 게 사실이다.

여야는 이쯤에서 가닥을 잡아야 한다. 정말 개헌 의지가 있다면 집권세력부터 내부 합의를 이루고, 그런 후에 여야가 개헌특위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의 주류와 비주류는 개헌 문제에서 간극(間隙)이 크다. 박근혜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처럼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그런데 이 장관을 비롯해 주류에서 이원집정부제 같은 권력분산형을 거론하자 비주류는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박 전 대표를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한 갈등부터 풀어야 개헌의 동력(動力)을 얻을 수 있다.

개헌은 필요하다. 그러나 야당은 고사하고 여당 내부조차 합의하지 못한다면 의석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개헌은 불가능하다. 여권은 마지막으로 의견조율을 서두르기 바란다. 그런 뒤 합의가 어려워 여건이 안 된다면 개헌 논의를 접고 차기 정부로 미루는 게 순리다. 대신 차기 주자들이 개헌안을 제시한 뒤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게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