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국내은행 외국인 이사 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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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하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조치라고 주장하는 반면 외국계 은행들은 외국인의 투자를 막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국수주의적 정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신학용(열린우리당)의원 등 21명의 여야 국회의원은 27일 '금융기관은 이사의 2분의 1 이상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임원으로 선임되는 날 현재 1년 이상 대한민국에 거주하지 않은 사람은 금융기관의 임원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임원으로 선임된 뒤 계속 거주하지 않으면 임원 자격을 박탈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이는 외국인 이사 수가 절반을 넘지 못하게 하고 거주자격도 최소 1년 정도로 제한하려던 금융감독원의 당초 계획보다 훨씬 강화된 방안이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신 의원은 "외국계 은행이라도 이사회가 외국인 위주로 구성되면 금융기관의 공공성이 저해될 수 있다"면서 "외국계 은행도 내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므로 과도한 외국인 이사 비중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재 외국인 이사 비중이 절반을 넘고 있는 한국씨티.제일.외환은행 등은 외국인 이사 일부를 내국인으로 교체해야 한다.

?외국은 어떤가=이 문제를 지난해 10월 말 처음 제기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국내 은행법이 국제적 표준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자본의 국적을 물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은행법도 글로벌 스탠더드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 금감위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도 국내 금융시장 제도와 관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언어와 관습을 잘 아는 내국인 비중이 일정 수준 돼야 한다. 그래야 공공성과 건전성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과 캐나다.싱가포르는 은행의 공공성을 중시해 외국인 이사 제한을 은행법에 명시하고 있다. 미국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의 이사는 임기 중 미국 시민권을 보유해야 하고, 다수의 이사가 선임 1년 전부터 은행 소재지로부터 100마일 이내에 거주해야 한다.

싱가포르.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도 국적 규정을 두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홍콩도 금융 당국의 승인을 거쳐 이사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독일은 감독 당국이 독일어 구사능력, 독일 금융법에 대한 이해, 유사 금융회사 근무 경력 3년 이상 등 까다로운 심사 규정을 두고 있어 사실상 외국인 이사 선임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아=외국계 A은행의 한 임원은 "미국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여서 외국인 이사 비중에 제한이 있어도 다른 나라 금융회사들이 진출할 수밖에 없지만 한국이 제한을 둔다면 외국 자본의 투자를 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국계 B은행의 임원도 "이사 수 제한이라는 규제보다 금융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에 더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실제 은행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하려면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서비스 협상에서 협의를 거쳐야 한다. 미국 등 제한 규정을 둔 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때 이를 양허안에 반영했지만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는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의원은 "WTO는 국가 간 평등을 존중하는 기구이므로 협상이 필요하더라도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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