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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째 영화로 제2의 데뷔 준비하는 이장호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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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느 날 아버지 친구였던 고(故) 신상옥 감독이 ‘너는 뭘 하고 싶으냐’라고 물어보셨어요. 차마 배우라고는 못하고, 연출을 하겠다고 대답했지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감독 인생이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바람불어 좋은 날’ ‘바보행진’ 등의 작품으로 198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이장호 감독(65·사진)이 31일 서울대 미술관에서 강연을 했다.

이 감독은 이날 74년 데뷔작 ‘별들의 고향’으로 말문을 열었다. ‘별들의 고향’은 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젊은 이 감독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을 “준비 없이 맞이한 첫 번째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아주 행복한 겉모습으로 찾아왔지만 사실은 위기였죠. 고생을 모르고 너무 쉽게 거머쥔 성공이었으니까요.”

성공 뒤에 닥쳐온 위기는 가혹했다. 이 감독은 76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4년간 활동을 정지당했다. 그가 이를 언급하자 강연장엔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 감독은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오히려 더 빨리 몰락했을 것”이라고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첫 번째 행운이 데뷔작의 성공이었다면, 대마초 파동으로 침묵했던 4년은 두 번째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사회와 나의 관계를 전혀 몰랐죠. 호화로운 응접실이 등장하던 내 영화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은 겁니다.”

대마초 파동을 겪은 뒤로 그의 영화는 사회 현실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형식을 띠게 됐다. 그의 카메라는 변두리의 소외된 사람들을 향했다. 80년에 발표한 ‘바람불어 좋은 날’의 주인공은 시골에서 상경해 중국집·이발소·여관에서 일하는 청춘들이다.

“상류 사회를 그린 영화는 유행이 지나면 촌스러워집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을 그렸던 영화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사실적이죠. 지금의 가난과 그때의 가난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게 곧 현실의 힘이죠.” 이 감독은 올해를 ‘제2의 데뷔’라고 표현했다. 전주대학교 교수에서 정년 퇴임한 뒤 다시 영화 제작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스무 살 새내기의 심정으로 준비하는 스무 번째 영화”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서울대 평생교육원 주최로 열렸다. 평생교육원장 양호환 교수는 “이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감회가 새롭다” 고 말했다.

박정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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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영화감독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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