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 리스트' 실체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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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지난해 7차례에 걸쳐 생산계약직 1079명을 채용할 때 사내외 추천인 등을 표시한 인사자료를 작성해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지난해 5월 1차로 채용한 132명의 리스트(사진)가 26일 공개됐다. 노조 간부와 회사 임직원 외에 노동청.구청 관계자 등이 채용 추천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 명단 외에 정.관계 고위직이 포함된 문건을 확보했으며, 여기에는 인사 담당자가 채용을 앞두고 사내외에서 메모 형식으로 요청받은 것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기아차 채용비리와 관련한 청탁 리스트 파문이 확산할 전망이다.


26일 공개된 기아차 광주공장 입사서류. 지원자의 신상정보·최종점수·추천인 이름 등이 적혀 있다. 이 문건은 원본을 핵심내용 위주로 재구성한 것이다.[매일경제 제공]

◆ 합격자 80% 인맥 동원=기아차 광주공장이 지난해 5월 뽑은 132명의 합격자 리스트에는 ▶신상정보(이름 등)▶고교 성적 등 서류심사 점수▶면접전형 내용▶최종합격 순위 등이 20여 항목에 걸쳐 정리돼 있다.

추천인란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60명이다. 나머지 70여명 중 절반이 넘는 40여명도 면접전형과정에서 추천인 등을 표기해 100여명이 인맥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체로 면접점수를 높게 받았고 일부는 월등히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노조 정모(45.구속) 광주지부장이 추천인으로 된 사람은 김모씨 등 2명이었다. 이들의 면접전형 내용에는 '새마을금고 이사장' '서구청 민원계' 등 다른 추천인이 명기돼 있다. 광주지부 수석부위원장인 정모씨도 사촌동생을 추천했다. 노조 대의원의 동생도 중간순위 233위에서 108위로 뛰어올랐다. 이들은 인문고를 나와 가산점이 있는 자격증이나 경력이 없는 데도 합격 처리됐다. 추천인으로 나와있는 회사 관리직 임직원은 지난해 말 퇴사한 정모 상무를 비롯해 부장.팀장.과장과 상용차연구소 직원 등 10여명이다.

추천인란에는 '보훈청'이라고 기관명만 쓰여있거나 이름만 적힌 경우도 있다. 면접내용에 '정 지부장이 고숙의 친구' '○○○부장이 매형'이라고 적히기도 해 편법 채용과정에 인맥이 총동원됐음을 보여줬다. 기아차 측은 이날 '입사추천에 대한 기아자동차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고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입사추천은 여러 장점 때문에 오래 전부터 시행돼 왔다"며 "선의의 추천인까지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취업 사례비' 천차만별=노조지부장 정씨는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8명으로부터 취업사례비를 전달받고 12명을 입사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모두 2억4700만원을 챙겼으며 이 돈을 자신의 집과 부인이 운영하는 옷수선집에서 받았다. 정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2명의 채용을 청탁한 정씨의 동생은 각각 5000만원과 7000만원을 전달해 노조 지부장과 형제임을 내세워 고액의 사례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다른 전달자는 1200만원을 건네 2명을 취업시켰고, 400만원을 취업사례비로 전달한 청탁자도 있어 정씨와의 친분과 자격조건에 따라 채용 대가가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천창환.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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