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아토피 고심하다가 유산균 사업까지 벌였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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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균에 푹 빠진 의사가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 김석진(44·사진) 교수가 주인공이다. 김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서울대 치과대를 졸업한 뒤 동기인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날아갔다. 인디애나대 치과대학에서 석사학위와 우리나라의 박사 학위에 준하는 디플로마(Diplomate)를 받고, 대학 사상 최초로 조기 졸업하는 영예를 안았다. 대학의 신임을 받은 그는 졸업과 동시에 교수로 임용됐다. 1999년부터 12년간 치과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2008년 미국 치주과협회로부터 우수 교수상도 받았다. 인종차별이 적지않은 인디애나에서 치주과협회장으로도 선출됐으며, 초청에 의해서만 회원이 되는 국제치과명예학회(OKU)의 멤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좋은 조건으로 치과 교수직을 제의받기도 했다.

미래가 보장되는 촉망받는 교수가 돌연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치과 분야가 아닌 세균과의 싸움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해 안식년 휴가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와 ‘VSL#3(www.VSL3.kr)’라는 제품을 론칭했다. VSL#3는 체내 유익한 유산균을 공급해 주는 제제.

친구와 가족은 “왜 안정된 의사와 교수직을 놔두고 사업을 하느냐”며 말렸다. “사업이 생각처럼 쉬운 줄 아느냐”는 훈계도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실패해도 좋았다.

그가 ‘세균과의 싸움’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아들의 아토피 때문. 둘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다. 병을 항상 달고 살았다. 두 살 때 걸린 중이염 때문에 항생제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 때문인지 아토피와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에 시달렸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항생제는 오래 사용하면 할수록 병에 더 취약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근본적인 문제가 몸 속 유익균의 부족 때문인 것을 알게 됐다. 치주학에서 구강 내 세균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관련 논문을 접하게 됐고, 더욱 확신을 했다. 치주질환을 비롯해 몸속 대부분의 내과질환은 외부 균의 침입에 패(敗)해서 시작된다. 이를 내버려두면 큰 질환으로 발전한다. 항생제가 있지만 내성균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근본 치료는 세균이 들어와도 몸이 스스로 이겨내도록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둘째 아이에게도 이런 치료법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현대인은 실제 장내 상주균(좋은 균)이 많이 부족한 상태다. 50년 전 사람의 대변과 현대인의 대변을 분석해 보면 장내세균총의 구성이 다르다. 몸속에 유익균을 많이 넣어주면 외부의 나쁜 균이 들어와도 몸이 저절로 이겨낸다. 유산균에 그가 매력을 가진 이유다.

그가 들여온 VSL#3는 이 같은 생각을 한 이탈리아의 석학 드시모네 교수가 개발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가 든 유산균 제제보다 약 100배 이상 유산균이 많다. 유산균 가짓수도 두세 배 더 많다. 미국·영국에서는 이미 소화기내과학회 치료 가이드라인에 이 제제의 사용이 포함돼 있을 정도. 영국에서는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 미국은 시그마 타우, 캐나다는 쉐링이 판매하고 있다. 김 교수는 “난치성 질환으로 고생하던 환자에게 희망을 줘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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