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우리 사회의 허약한 도덕성, 그 뿌리는 식민통치의 유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김기협 지음, 돌베개, 304쪽, 1만5000원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을 만큼 도발적이지만, 그러기에 한국근대사를 다시 보게 해주는 신선한 ‘에세이’이다. 에세이라 함은, 중국사를 전공한 지은이가 인정하듯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는~”하며 주관적 역사 읽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먼저 불편한 대목.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지만 조선 망국의 모든 책임을 일본에 지우는 것은 옳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강제 병합을 마치 어두운 골목에서 ‘퍽치기’라도 당한 듯 보고 조선 망국의 내재적 원인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서는 올바른 진단과 내부 성찰을 막을 뿐이란 이유에서다.

지은이는 서양 근대 문명의 팽창을 망국의 원인 중 하나로 인정하면서도 유교 정치의 쇠퇴가 핵심 요인이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조선 왕조에서 누린 안정과 번영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많지 않을 정도로 유교정치는 성공적 체제였다. 당위의 권력인 왕권과 현실의 힘인 신권(臣權)이 상호 견제하면서 지배층의 권력이 공공에 복무하도록 한 덕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유교 국가는 납입금이 많은 고객에게 큰 혜택을 제공하지만, 납입금이 거의 없는 고객에게도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보장해 주는 ‘보험’체계의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이것이 17세기 이후 붕당정치, 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권력의 사유화’가 진행된 끝에 망국을 불렀다는 것이다.

궁궐 헐고 조선총독부청사 일제 식민통치기의 희귀 자료와 사진을 집대성한 『일제강점기』(박도 엮음, 눈빛, 767쪽, 2만9000원)에 실린 총독부 청사 기초공사 현장. 총독부는 한·일합병 이후 경복궁 안의 건물 4000여 간을 헐어 불하했고 1916년에는 근정전 앞마당에 총독부청사를 짓기 시작했다. [눈빛 제공]

권력 사유화의 예로는 다음 왕이 될 동궁(東宮)의 자리가 장기간 비어 있었던 사실을 들 수 있다. 1849년 현종이 23세에 죽을 때까지, 1863년 철종이 33세에 죽을 때까지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 세도정치의 주역인 안동 김씨 측의 “이대로!”란 생각 탓이었는데 이는 정상적 왕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왕마저 모리배들 틈에 끼어들어 자기 몫 챙기기에 바빴다는 기록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1887년 천자의 탄생기념일인 만수절에 외척들이 고종에게 지방 감사의 진상품을 바쳤는데 고종은 비단 등 옷감만 적은 목록은 용상 아래로 던져버리고, 백동 등이 함께 적힌 목록을 보고서야 “감사들이 이렇게 예를 차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전라감사가 나를 사랑하는구나”라며 기뻐했단다.

통념과 다른 도발적 시각도 눈에 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없었다면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허구란다. 오히려 대원군을 ‘유교정치의 회복’이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일례로 고종 즉위 직전엔 양반층까지 참여한 민란이 빈번했으나 대원군 집권 후 사그라진 사실을 두고, 세도 정치 시절과 차원이 다른 개혁정책의 효과였을 가능성을 비추는 식이다. 대원군의 정책이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숨넘어가는 ‘환자’를 일단 살려놓기 위해서는 장기적 효과에 관계없이 뭐든 당장 숨통을 틔워줄 수단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옹호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고 이듬해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에 관한 대목도 논란이 일 수 있겠다. 그가 일본내 온건노선의 대표로서 무력합방을 피하기 위해 애썼으며 하얼빈에서 저격당한 뒤 조선 청년(안중근 의사)이 총을 쐈다는 말을 듣고 “어리석도다”라고 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보니 말이다.

“조선 왕조의 멸망 자체에 대해서는 일본에게 큰 죄가 없다…조선 왕조는 일본의 도움 없이도 망할 길을 오랫동안 잘 찾아왔다.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진짜 피해자는 왕조가 아니라 민족사회였다.”(180쪽)

“100년 전에 우리 사회가 입은 피해의 본질은 전통의 단절에 있었고, 전통의 단절로 잃어버린 것이 도덕성이었다. 전통과 도덕성에 집착한 사람들을 대거 도태시키고 도덕성이 박약한 집단에게 사회적 주도권을 맡긴 것이 식민통치의 가장 큰 죄악이었다…한국인들, 특히 엘리트 계층 한국인들의 도덕성 수준이 20세기에 들어와 형편없이 떨어진 것은 국가가 망하고 이민족의 악질적 지배를 받은 때문이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299쪽)

세상을 보는 눈을 이 정도로 일깨워준다면, 이런 책 한 권 얼른 펼쳐들지 싶다.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