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에 울고… 웃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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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영어로 출판된 이현세의 '남벌'(上)과 프랑스어로 선보인 이소영의 '모델'(下). 대사는 영어로 번역했으나 '짝짝짝'은 그림의 일부로 간주, 한글로 처리됐다.

한국 만화가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02년에는 70만 달러에 불과했던 해외 수출액이 지난해에는 600만 달러로 치솟았다. 팬터지 만화 '라그나로크'(대원씨아이)는 미국에서만 60만 부가 팔렸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시장까지 합하면 대원씨아이가 '라그나로크'로 벌어들이는 저작권료는 연간 2억원이 넘는다. 수년 전만 해도 '일본 망가의 아류'로 평가받던 한국 만화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변했다. 이유가 뭘까.

◆ 열광하는 해외 청소년=27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에서는 2005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이 열린다. '프리스트'의 형민우, '모델'의 이소영 등 국내 만화 작가 열 명이 페스티벌에 참가, 사인회등을 통해 프랑스 독자들과 직접 얘기를 나눈다. 지난해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주빈국으로 선정된 한국은 100평 규모의 전시장을 빌려 200편이 넘는 만화를 전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려 8만 명의 관람객이 한국 전시장을 다녀갔다. 질문도 많았다. "망가와 만화가 어떻게 다르냐"부터 "만화 'K2'에서 왜 남자가 여자 친구에게 핸드폰을 선물하느냐" 등 한국인의 정서에도 상당한 관심을 표시했다. '용비불패''풀 하우스''남벌' 등이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됐다.

특히 프랑스 청소년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문화콘텐츠진흥원 캐릭터.만화팀 박성식 과장은 "가방에다 한글로 '사랑'이라고 쓴 학생도 있었고, 원어 만화를 읽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는 학생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 무기가 된 아킬레스건=국내에는 아직도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사람이 많다. 독자층도 청소년에 편중돼 있다. 만화도 시장의 수요를 따른다. 국내 만화는 주로 청소년의 정서와 관심사를 다룬다. 만화 관계자들은 "폭 넓지 못한 독자층은 국내 만화 산업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해외 시장에선 약점이 강점으로 돌아섰다.

미국 만화는 주로 히어로(영웅)물이다. 수퍼맨.배트맨.스파이더맨.데어데블 등이 그렇다. 주인공은 '정의의 사도', 주제는 항상 '권선징악'이다. 또 유럽 만화는 대부분이 교육물이다. '땡땡이의 모험''개구장이 스머프' 등 한마디로 배움을 위한 만화다. 미국과 유럽의 청소년들은 한결같이 "우리 또래 얘기를 읽고 싶다"며 "청소년 정서를 대변하는 만화가 없다"고 불평한다.

그 틈새를 한국 만화가 뚫었다. 한국 만화를 내는 프랑스 시베드 출판사의 크리스토퍼 르 메르 사장은 "한국의 순정만화는 미국과 유럽 청소년들을 울렸고, 액션 만화는 이들이 목말라하던 사춘기 시절의 팬터지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아직은 일본 만화가 더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 만화의 추격이 거세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의 정현철 팀장은 "현재 미국.유럽 시장에서 일본 만화와 한국 만화의 비율은 80 대 20"이라며 "5년 안에 70 대 30까지 따라 잡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 때는 만화의 연간 수출액은 1000만~150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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