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통찰 … 소비사회는 얼마나 황폐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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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리처 교수는 “며칠 안 됐지만 가게 하나 걸러 보이는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을 보면서 서울도 얼마나 광범위하게 ‘맥도날드화’ 돼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햄버거 하나로 현대사회의 그늘을 파헤친 세계적 사회학자 조지 리처(70·미국 메릴랜드대) 교수가 첫 내한했다. 리처 교수는 대표작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원제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에서 20세기 후반의 획일적 사회를 비판하며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가 빚어낸 ‘맥도날드화’가 큰 반향을 끌어냈다. 맥도날드라는 특정 브랜드를 학문화했다는 점, 사소한 일상에서 현대문명의 모순을 간파한 점 등이 높게 평가됐다. 28일 개막하는 춘천 월드레저총회 기조연설차 내한한 그를 25일 만났다.

-‘맥도날드화’ 란 무엇인가

“맥도날드를 상상해보라. 척척 돌아가는 기기, 분 단위로 딱 맞춰 나오는 햄버거, 싼 가격에 풍성하게 나온 음식을 먹고 나가는 활기찬 도시인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렇게 정확하고 편리하게 돌아가는 맥도날드가 알고 보면 인간을 더 황폐하게 만든다.”

- 그런 간편함이 맥도날드의 성공 요소다.

“맥도날드는 4가지의 매혹적인 요소 덕분에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첫째, 효율성(Efficiency)이다. 맥도날드는 소비자에게 배고픈 상태에서 벗어나 포만감을 안겨주는 최선의 방법을 제공한다. 둘째, 계산가능성(Calculation)이다. 맥도날드에선 주문한 음식이 몇 분만에 나올지, 양이 얼마나 될지, 돈이 얼마 들지 정확히 짐작할 수 있다. 셋째,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이다. 베이징의 맥도날드에서든, 파리의 맥도날드에서든 우린 같은 음식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 생산 과정의 엄격한 표준화로 인한 결과다. 넷째, 자동화를 통한 통제(Control)다. 이 모든 프로세스는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작동된다.”

-맥도날드화란 이 4가지 요소를 들춰낸 것인가.

“그렇다. 비판적 개념이다. 효율적이라는 맥도날드에서 소비자가 계산대에 길게 줄을 서는 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대량의 감자를 공급하기 위해선 그 이상의 화학비료를 쓴다. 맥도날드는 어느새 환경 오염과 비만의 최대 원인 제공자가 됐다. 소비자도 자기가 먹고 싶은 것보다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뻔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공장 조립라인에 서 있는 것처럼 직원들은 무미건조해졌고, 손님들은 불편한 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빵을 먹어야 한다. 맥도날드화란 결국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이 역설적으로 ‘불합리성’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맥도날드화가 특정지역에 한정된 게 아닌, 전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지구촌의 동질화를 가져와 개성을 몰살시킨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굳이 맥도날드화로 명명한 이유는.

“추상적 용어로 표현했다면 누가 관심이나 가졌겠는가. (웃음) 이젠 사회학도 ‘그들만의 학문’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

-‘코카콜라화’나 ‘나이키화’라고 부를 순 없는가.

“코카콜라나 나이키도 세계적인 브랜드이긴 하다. 그러나 맥도날드처럼 새로운 조직의 형태를 갖추진 못했다.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버거킹·피자헛 등이 맥도날드의 생산방법과 운영원리를 그대로 차용했다. 무엇보다 맥도날드는 소비 패턴을 규정했다. 소비자가 줄을 서서 기다려 자기가 직접 주문한 뒤 음식을 가져다 먹고 치워야 한다. ‘포디즘’(Fordism)이 일관된 작업과정이라는 생산에 초점을 두었다면 맥도날드화는 소비를 분석했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했다.”

-맥도날드화가 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진다고 경계했다.

“교회를 예로 들어보자. ‘기독교 신자가 되는 7가지 방법’과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부흥회는 손쉽게 수천 명의 신도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를 또 위성중계를 통해 전세계에 똑같은 내용을 퍼뜨리고 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과 직면해야 할 종교마저 계량화·편리성·획일성을 미덕으로 치부하고 있는 셈이다. 크리스천의 맥도날드화다.”

-책은 17년 전에 처음 나왔다. 그간 사회도 많이 변했는데.

“스타벅스가 출현해 더 이상 맥도날드화는 무의미해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스타벅스의 고급스런 시설, 가족처럼 챙기는 직원, 오리지널 원료를 쓰는 커피 등의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맥도날드화를 극복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푹신한 소파에서 편안하게 커피를 즐기는 이는 스타벅스 소비자 중 10%도 안 된다. 단지 이미지이며 환상일 뿐이다. 스타벅스는 위장된 맥도날드다.”

-맥도날드화는 불가피한 대세인가. 대안은 없나.

“난 맥도날드를 ‘섬’이라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드문드문 있던 이 섬들이 도시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 틈을 노려야 한다. ‘슬로 푸드’ ‘느리게 살기’ 등이 대안일 수 있다. 무엇보다 맥도날드화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맥도날드화와 맞설 수 있는 출발점이다.”

글·사진=최민우 기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1940년생. 미국 뉴욕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저명한 사회학자지만 공부한 과정은 특이했다. 62년 뉴욕시 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미시간대 MBA 코스를 밟았다. 코넬대에선 노사 관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통 사회학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하지만 이런 학문적 배경을 밑천 삼아 현대사회의 특징적 요소인 소비문제에 민감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역저인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는 2000년대 들어 국내 주요 대학의 논술 문제로 출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사회학 이론과 그 고전적 뿌리』 『소비사회학의 탐색』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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