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일 깜짝 방중 … 한반도 안보지형이 요동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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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동북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전격적으로 중국 방문 길에 올랐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 체재 중에 이뤄진 것이라 더욱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같은 시각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놓고 북한과 심도 있는 협의를 벌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서울에 왔다. 남·북과 미·중이 모두 개입된 비중 있는 외교 이벤트들이 동시에 벌어진 것이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 5월 초 정상회담에서 중대한 내정·외교 문제와 국제 및 지역정세 등에 대해 수시로, 정기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기로 합의했다. 김 위원장의 전격적 방중(訪中)은 그가 직접 나서야 할 정도의 ‘중대한 내정·외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그것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권력 승계 및 경제난 해소와 관련된 것이다. 북한은 오는 9월 초 열릴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 후계체제’를 보다 가시화하고 2012년 강성대국 진입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다. 이를 위해선 경제난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주민들이 헐벗고 배를 곯고 있는 상황에서 ‘후계 경사(慶事)’니 ‘강성대국’이니 하는 말을 꺼내기란 아무리 독재체제라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동북 3성(省) 및 나진항 개발 등 양국 경제협력의 구체적 발전 방안과 경제지원 문제에 대해 중국으로부터 확답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6자회담이다. 현재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강력히 바라고 있다. 중국 국익에 부합하는 한반도 안정을 다지고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다.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받으려면 6자회담 재개에 성의를 보여야 할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북한도 그동안 한·미의 완강한 북핵 불가 입장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정책 전환’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중국과의 담판에 나선 것도 핵사찰 허용 등 ‘상당 수준의 전향적 대안’을 중국과 협의한 뒤 미국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회담 결과에 따라선 한반도 안보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천안함 사태와 북핵에 대한 한국의 기존 입장이 크게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정세 급변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획기적인 핵 제안이 나올 경우,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한 차원 높게 응수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을 통해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관해 어떤 식으로든지 사과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교력도 요청된다. ‘외교에는 절대 가치도 없고 절대 승자도 없다’는 말이 있다. 핑핑 돌아가는 국제기류에 슬기롭게 올라타야 국익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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