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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북·중 경제돋보기] (3) 나진항

중앙일보

입력

나진항은 함경북도 나선시에 있는 항구입니다. 중국 훈춘-나진간 고속도로 (93㎞) 건설이 추진(4000만 달러 추정)되면서 나진항이 북중 경제 협력의 새로운 이정표로 주목 받고 있지요. 또한 최근에는 북한이 나진항의 부두 개발권과 전용권을 중국에 넘겼다는 보도까지 나와 관심을 끌고 있지요.

나진항은 러시아가 개발한 항구입니다. 북한이 1973년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소련의 지원으로 기중기를 설치하고 항만시설을 확장했지요. 러시아는 1974년부터 나진항을 통해 베트남으로 전략물자를 수송했고, 북한은 1977년 나진항의 제2, 제3 부두를 사용해 동남아시아로 중계 무역을 할 수 있도록 러시아에게 독점권을 주었습니다. 나진항은 1978년부터 러시아 선박이 연간 450척, 취급화물량 1백만 톤을 이용할 수 있는 항구로 성장합니다. 러시아는 나진항을 이용하면서 블라디보스톡과 나홋카 항이 결빙되는 11월부터 3월까지 대일․ 대동남아 수출입 화물의 수송이 가능해졌지요. 나진항은 러시아의 극동지방 경제의 생명선이나 다름없습니다. 나진항에는 북한 해군의 조선소와 해군전용 부두가 있고, 중요한 제2, 제3부두는 러시아가 전용하고 있지요. 나진항은 현재 5개 부두가 있지요.

북한은 1979년 나진항을 러시아의 군사기지로 사용하도록 허락했지요. 중국은 이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중국은 일본과 수교를 체결(1978년 8월 12일) 한 이후 일본으로의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항구가 필요했지요. 중국은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한 동북 3성의 대일 수출입 창구로 다롄(大連)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폭주한 화물 탓에 중국은 대체 항구가 필요했지요. 그런 상황에 나진항을 러시아에게 군사기지로 사용하도록 한 것은 참을 수 없었지요. 아직도 중소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무역항에다가 군사기지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중국은 곧 바로 석유의 수출량을 줄였지요.

중국은 대신에 함경북도 청진항을 이용하게 해 달라고 북한에 요구했습니다. 중국은 1981년 무역 운송 분야 실무자를 북한에 보내 중국 수출화물의 청진항 이용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지요. 그해 12월 자오쯔양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원칙적인 합의를 체결합니다. 양국은 1982년 8월 24일 실무책임자 선에서 구체적인 협의 사항을 모두 마무리 짓지요. 북한은 1983년 3월부터 청진항의 본항․ 동항․ 서항 가운데 동항(東港)을 중국에 제공합니다. 중국은 일본에 콩을 수출하고 비료를 수입했지요.

후야오방 총서기가 1984년 5월 4일 평양을 방문합니다. 후야오방은 청진항을 둘러보고 김일성에게 청진항 동항의 독점적 이용을 요구했지요. 북한은 당시 러시아로부터 나진항의 화물 통과 수수료로 1톤당 15달러를 받고 있었는데, 그 수준을 중국에 적용한다면 1983년 51만 달러, 1984년 3백만 달러로 북한의 외화수입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지요. 중국의 입장에서는 창춘-하얼빈-투먼-난양-청진선을 이용할 경우, 이전의 다롄항을 통한 수송로 보다 약 1000km 이상 거리가 단축되는 등 수송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지요. 후야오방은 나진항 개발에 러시아가 자금을 지원했던 것처럼, 청진항의 시설확충과 수송체계를 현대화하기로 김일성과 합의했지요.

중국이 2000년에 들어 청진항에 이어 나진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북 3성의 물류 문제 때문이었지요. 동북 3성의 곡물과 석탄, 목재 등을 중국 남부나 해외로 운송하기에는 다롄(大連)항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따라서 경제적 이익만으로도 중국은 청진항 외에 나진항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다롄에 본사를 둔 중국 업체인 창리(創立)그룹이 나진항 제1부두의 개발권과 사용권을 따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지요. 동북 3성의 물류를 나진항을 통해 중국 남부로 이송할 경우 다롄항 보다 톤 당 10달러의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훈춘~다롄은 1300km, 훈춘~나진은 93km입니다.

안보적으로 중국은 나진항 진출을 통해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국․ 중국․ 일본이 동해에 접근할 것을 대비한 장기적 포석일 수 도 있지요. 이는 과거 소련이 나진항을 군사기지로 활용한 것과 같은 생각이지요. 현재 나진항 제2, 제3부두는 러시아가 군사기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사용하고 있는 제1부두를 군사기지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지요.

중국에게 나진항은 다목적용으로 필요한 항구가 됐습니다. 러시아는 나진항을 극동지역의 물류기지로 활용하면서 장기적으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 연계 사업 ▶시베리아 석유, 천연가스의 수출 중개 기지 ▶대북 영향력 확대 등을 노리고 있지요. 중국도 이에 질세라 ▶동해 진출 통한 시장 개척 ▶물류비 절감 ▶대북 영향력 확대 등을 계산하고 있지요.

나진항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각축장이 됐습니다. 구한말 대한제국을 놓고 서로 싸웠던 것과 비슷한 형국이지요. 한국은 지금 가만히 지켜만 보아야 하나요?

☞고수석 기자는 중앙일보 사회부・ 전국부를 거쳐 통일문화연구소에서 북한 관련 취재를 했다. 중앙일보 전략기획실 차장. 고려대에서 ‘북한・ 중국 동맹의 변천과정과 위기의 동학’ 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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