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개발 표류 위기] “삼성물산도 빠지는데…새판 짜기 힘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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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지분 70%를 갖고 있는 코레일과 재무·전략적 투자자들은 삼성물산을 배제키로 결의함으로써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자평한다. 삼성물산의 힘을 빼 지급보증을 통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23일 서울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시행사 이사회에서 김기병 의장이 두드리던 의사봉이 부러지자 난감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떻게든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기존 건설 투자자는 물론 건설·부동산 업계에 보여줬다는 것도 성과로 본다. 이를 통해 건설 투자자들의 지급보증을 장려할 수 있고, 삼성물산을 대체할 새로운 건설 투자자를 모집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건설·부동산 업계는 문제의 핵심이 빗나갔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당장 사업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부동산 값이 떨어져 발생한 문제인데 주요 투자자들이 자금 조달에만 연연해한다”며 “이런 식이라면 사업이 뚜렷한 결론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새 투자자 적극 수용=‘지급보증을 거부하고 있는 삼성물산을 빼고 새 판을 짜겠다’. 이게 코레일과 재무·전략적 투자자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코레일과 재무·전략적 투자자들은 삼성물산을 이 사업에서 배제키로 한 것이다. 다음 달 9일 열리는 드림허브PFV(이하 드림허브)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의 힘을 빼기 위한 정관 개정안이 통과되면 코레일과 재무·전략적 투자자들은 곧바로 드림허브 이사회를 다시 열어 지금의 드림허브 자산관리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AMC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새로 만들 AMC는 자금 조달 기여도에 따라 구성된다. 가령 드림허브 지분은 얼마 안 되더라도 지급보증 규모가 크면 새 AMC의 대주주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드림허브는 다음 달 13일 새로운 건설 투자자 모집 공고를 낸다. 사업설명회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11월 5일 새 건설 투자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맥을 잘 못 짚었다”=하지만 관련 업계는 총 사업비가 31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판을 새로 짜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 투자자로 참여한 한 건설사 담당팀장은 “건설사만의 지급보증을 거부한 건 삼성물산의 독자적인 의견이 아니라 사업에 참여한 17개 건설사의 공통된 입장”이라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성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삼성물산을 대신할 건설 투자자를 찾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회사 임원도 “건설사마다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공권 추가 확보를 목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건설사는 없을 것”이라며 “따라서 사업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새 사업자를 찾는다 해도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코레일은 땅값을 낮추거나 대금 납부일을 늦춰 사업이 궤도에 오르도록 양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한 계획을 다시 세워 끌고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정준호 교수는 “최근의 부동산·금융시장의 여건을 감안해 2016년까지 정해져 있는 사업 시기를 조정하고, 단계를 나눠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레일과 재무·전략적 투자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코레일 김흥성 대변인은 “어느 정도 사업성이 악화된 것은 맞지만 삼성물산의 주장처럼 손해를 볼 정도는 아니다”며 “또 시공권 배분을 기대하고 새롭게 사업에 참여하려는 대기 건설사가 많다”고 주장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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