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자금, 은행 이탈 가속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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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시중 자금의 흐름에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은행 예금과 채권형 펀드에 들어있던 자금들이 저금리 상황을 견디지 못해 주식시장 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모습이다. 간접투자 부문에서도 주식투자 비중이 큰 펀드일수록 잘 팔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안전보다는 수익을 좇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해외 주요 증시의 하락세에 주목하며 한국 증시에 선뜻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증시로 몰리는 국내 자금=투자자들이 주식매매를 위해 증권사에 맡겨둔 고객 예탁금은 20일 현재 9조8268억원을 기록, 올 들어 1조6958억원이나 늘어났다. 은행권에서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8일 현재 은행들의 총 예금 잔액은 507조337억원으로 올 들어 3조664억원 감소했다. 단기 시장성 수신까지 합하면 은행권 자금 이탈 규모는 4조1000억원에 달한다. 은행 총예금은 지난해 5조원 빠져나갔는데, 올 들어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펀드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혼합형(주식과 채권을 섞어 운용)과 주식형 펀드에 올 들어 약 5000억원의 자금이 새로 유입됐다. 반면 순수 채권형 펀드의 판매 잔액은 9768억원이 줄었다. 주식투자 비중이 자산의 70%가 넘는 성장형 펀드는 올 들어 평균 4%대의 수익률을 내고 있는 반면 채권형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우증권 김성주 애널리스트는 "은행 예금의 88%가 연수익률 4.4% 미만이어서 은행권 자금 이탈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동향이 관건=증시에서 외국인 지분 비중이 42%에 이르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 없이 국내 자금만으로 주가의 안정적인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한국 주식 매수에 소극적이다. 특히 지난주 후반부터 매도 주문을 쏟아내면서 21일에는 1517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연초 세계 증시의 흐름을 보면 한국만 강세를 이어가고 있을 뿐 대부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CJ투자증권의 조익재 리서치센터장은 "다음달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0.25%포인트보다 더 올린다면 국제 자금이 미국으로 본격 환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원기 메릴린치증권 전무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하는 이유는 금리나 환율이 아니라 성장 매력 때문"이라며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외국인 자금 이탈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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