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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골드 미스' 연말 안 두렵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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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연말이 되면 서른살을 넘긴 직장의 노처녀들은 바빠진다.

부서 송년회는 물론 동창회, 동아리 모임 등 참석해야 할 행사가 줄을 잇는다. 때론 이 와중에 "또 한 살을 먹으면 어떻하느냐"며 걱정하는 부모·형제까지 안심시켜야 한다. 그러나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직장에선 '골드 미스(경제력을 갖춘 미혼여성)'들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아직 결혼은 '노(No)'를 외치는 노처녀 직장인들의 연말 나기 풍속을 살펴봤다.

◇내일을 위해 땀흘린다=해외 명품브랜드의 국내수입업체에 다니는 김은지(34) 과장은 일에 파묻혀 연말을 보내고 있다.

국내 면세점 관리와 신제품 전시, 재고관리까지 맡고 있는 그는 요즘 특히 연말 결산 때문에 정신이 없다. 크리스마스날에도 출근해 오전엔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난 후에야 오후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나마 짬이 나면 내년 1월말로 예정된 이탈리아 본사 출장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롯데호텔의 와인바 & 숍의 서은경(30) 지배인은 12월 한달간 개인적인 약속이나 모임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호텔식음료업장은 밀려오는 예약과 손님맞이에 눈코뜰 새 없이 바빠지기 때문이다. "이맘 때가 되면 주위에서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데 사실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있어야지요." 그는 연말에는 하루하루를 전쟁 치르듯 한다고 말했다.

모 방송국의 경영전략실에서 근무하는 황은주(29) 대리는 연말을 맞아 가슴이 설렌다. 노처녀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30대의 문턱에서 애인이 생겼다거나 장래를 약속할 남자가 생겨서가 아니다. 黃대리의 새해 계획은 자아 실현을 위해 유학을 떠나는 것이다. 올 한해 차근차근 해온 유학 준비가 마무리돼 이제 내년에는 평소에 꿈꿨던 언론홍보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향할 계획이다.

주변에선 "노처녀로 늙고 싶으냐"며 걱정하는 친지가 많지만 아직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목 잡히기 싫다. 결혼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해 평생 후회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일본어 통역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경희(32)씨는 연말연시가 되면 같은 또래 여자친구 대여섯명과 록 콘서트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올해도 12월 31일 저녁에 있을 록 콘서트 표를 예약해 놓았다. 윤도현 밴드 팬클럽의 열성적 회원인 羅씨는 다양한 콘서트들이 잡혀있는 연말이 되면 전국 각지로 콘서트를 쫓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그는 "친구들과 공연에 푹 빠졌다가 나오면 벌써 밤 늦은 시간 12월의 밤은 너무 짧다"면서 "연말이 되면 물을 만난 고기처럼 공연장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닐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지스벤처그룹 신은정(32) 팀장의 별명은 '코란도 걸'이다. 가녀린 체구지만 건장한 남자 못지 않은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일과 취미생활에 땀을 흘리고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서 초조함 같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연말이 되면 申팀장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하다. 해 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선을 보러간다는 주말이면 업무로 고단해진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스노보드를 타러 간다. 최근에는 테헤란 밸리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까당스'란 음악 모임의 대표까지 맡아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생활해야 할만큼 바쁘게 살고 있다.

유권하 기자

kh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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