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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面敎師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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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을 많이 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나오는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을 줄인 것으로 남의 산의 돌이라도 옥을 가는 데 쓰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군자도 소인의 하찮은 언행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있다. 의미가 보다 직설적이다. 이 말은 중국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毛澤東)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반면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요즘은 보통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을 말한다. 교통사고로 휴지처럼 구겨진 자동차를 사고다발 지점에 갖다 놓는 것이 극단적인 예라 하겠다.

며칠 전 미국 언론들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 슈뢰더 독일 총리가 닮은 데가 많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슈뢰더'로 표현하면서 비판적으로 보도한 신문도 있다. 미국 입장에선 석달 사이에 반미 성향의 인사가 주요 동맹국 지도자로 등장한 사실이 내심 껄끄러운 모양이다.

사실 둘 사이엔 비슷한 점도 많다. 미국에 할말은 하겠다는 자세나 불우했던 성장과정, 젊은 세대에 어필하는 감성 등이 그렇다. 특히 상대후보에게 내내 뒤지다 막판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은 흡사하다.

盧당선자가 이런 비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언제 기회가 있으면 이 표현을 정중히 사양하길 권한다. 대신 슈뢰더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슈뢰더를 따라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재집권에 성공하자마자 슈뢰더는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했다.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공약을 깬 것이다. 이를 풍자한 '슈토이어송(세금노래)'은 요즘 몇주째 독일 인기가요 차트 1위를 달리고 있다. 얼마 전 여론조사에선 기업들의 40%가 높은 세금 때문에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인기도 바닥세다. 총선 때 38.5%였던 사민당 지지율이 현재 20%대로 떨어진 반면 기민·기사당 지지율은 50%대로 치솟았다. 재선거를 치르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불과 3개월 만에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원성이 드높다. 게다가 이라크전 반대로 재집권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게 부메랑이 돼 독일은 요즘 국제적으로도 외톨이 신세가 돼 가고 있다. 얼마나 훌륭한 반면교사인가. 물론 국내에 더 훌륭한 '전임' 반면교사들이 있긴 하지만.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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