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무엇에 기뻐하고 화내는지 국제사회도 이제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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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은 개혁·개방 30년을 지나면서 정부도 공산당도 언론도 변했다. 그런데도 한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는 달라진 중국을 대할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다. 이제 중국인들이 무엇에 기뻐하고 화내는지 외부 세계도 알아야 한다.”

19일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는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 [베이징=김동욱(T-STUDIO)]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속내를 강경한 논조로 보도해온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1인자 후시진(胡錫進·50) 총편집. 그는 “중국이 더 이상 과거처럼 국제 문제를 대할 때 체면을 따지며 수줍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세계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정확하게 중국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솔직한 반응을 외부 세계에 전달하는 것이 환구시보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후 총편집은 한·중 수교 18주년(24일)을 앞둔 19일 3시간가량 진행한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 이후의 한·중 관계, 미·중의 패권 경쟁, 중국의 언론 환경 변화 등에 대해 기탄없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그는 “한국 정부가 ‘작은 안보’에 치중한 나머지 북한을 압박해 결국 중국과 미국의 대립을 초래함으로써 동북아 안정이라는 ‘큰 안보’를 놓치고 있다”며 “한국이 안보 전략에서 길을 잃지 않았나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993년 창간 배경은.

“인민일보의 수많은 특파원을 활용할 방안을 찾다가 창간됐다. 중국인들은 과거에는 흥밋거리나 지식 차원에서 국제뉴스를 봤다. 그러나 중국이 개방되면서 이제는 중국의 국가이익 차원에서 국제뉴스를 많이 본다.”

-인민일보와 정부의 영향을 얼마나 받나.

“인민일보가 나를 임명했고 나를 자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취재와 보도는 독립적이다. 중국의 모든 미디어는 정부가 소유하고 지도하는 관방매체(state media)로 큰 방향에서 정부의 영향을 받는다. 하나 정부는 우리에게 한 푼도 주지 않는다. 우리의 하느님(上帝)은 독자다.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말하려 노력한다.”

-정부의 입장을 얼마나 대변하나.

“우리는 주류 사회의 입장을 대변한다. 정부와 일치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정부의 시각을 전달할 경우도 있지만 정부가 배후에서 조종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정부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

-당의 ‘대변인(喉舌:나팔수)’ 격인 중국 언론이 당 선전부의 입장과 다른 보도를 하면 어떻게 되나.

“기분 나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 의견을 듣지만 그들의 말을 다 듣지는 않는다.”

-내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일반적인 중국인과 달리 환구시보는 공세적인데.

“수줍어하는 게 중국의 본모습인지는 의문이다. 과거 중국 독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중국을 보는지 몰랐다. 지금은 우리가 진짜 상황을 알려준다. 한국이 중국을 비판해도 과거에는 보도를 안 했지만 이제는 보도한다.”

-애국심·민족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있는데.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가 서로 정확한 소통을 하다 보면 다툴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의 애국심은 존중해줘야 한다.”

-최근 ‘한국을 힘으로 제압해야 하느냐’는 인터넷 설문은 공정성이 떨어져 보였다.

“나도 100% 만족하지는 않았다. 20대 젊은 기자들이 설문 문항을 만들다 보니 일부 문제는 있었지만 전체적인 양국 관계 보도는 객관적으로 해왔다.”

-천안함 사건 보도의 원칙은.

“누가 사건을 저질렀는지는 우리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북한·미국의 입장을 중립적으로 전달했다.”

-수교 18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를 어떻게 보나.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고 전체적으론 나쁘지 않다. 다만 한국 지도층의 동북아 전략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을 과신해 미·중 대립을 초래했다. 미·중이 싸우면 가장 먼저 피해 보는 게 한국이다. 한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길을 잃을까 걱정이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환구시보는 인민일보가 100% 출자 … 150만 부 발행

환구시보 후시진(胡錫進) 총편집은 인민일보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한 국제통이다. 1993~96년 유고슬라비아에 파견돼 보스니아 전쟁을, 2003년에는 이라크전쟁 현장을 누볐다. 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났으며 난징(南京)의 해방군외국어대학과 베이징외국어대(석사)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94년에는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을 수행 취재했다.

부총편집 자격으로 환구시보 창간멤버로 참여했고, 2005년 10월부터 5년째 환구시보의 1인자로서 신문 제작과 경영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국제문제 전문 자매지다. 인민일보가 100% 출자해 93년 창간한 ‘환구문췌(環球文萃)’가 전신이다. 97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타블로이드 판으로 매주 월~금요일 하루 16면, 150만 부씩 발행된다. 전국 43개 지역에서 동시 인쇄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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