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애 “우승 못 해본 동료에 희망줬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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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우승컵을 들고 활짝 웃는 함영애. [KLPGA 제공]

챔피언 퍼트를 마친 함영애(23·세계투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였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한 이후 첫 우승. 지난 5년간 고생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모양이었다. 그는 18번 홀 그린 주변에서 기다리던 어머니 박향수(47)씨와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함영애가 22일 제주 더 클래식 골프장(파72·6402야드)에서 끝난 KLPGA투어 넵스 마스터피스 최종 4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쳐 합계 13언더파로 역전 우승했다. 생애 첫 우승을 거둔 함영애는 이날 우승상금으로 1억2000만원을 받았다. 올 시즌 그가 벌어들인 총상금(2087만원)의 6배 가까운 금액을 단숨에 챙긴 것이다. 안신애(BC카드)와 조윤지(한솔)가 합계 11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올랐다.

5번 홀(파3)에서 터져 나온 홀인원이 우승의 신호탄이었다. 전날까지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3위를 달렸던 함영애는 이날 135야드 거리의 5번 홀에서 9번 아이언으로 때린 공이 그대로 홀 속으로 빨려들면서 단숨에 서희경(하이트)과 함께 공동선두에 올라섰다. 그린을 튕기지도 않고 그대로 홀 속으로 들어가는 ‘슬램 덩크’ 홀인원이었다.

함영애는 지난 5년간 톱10에 오른 것이 고작 네 차례에 그쳤던 무명 골퍼. 지난해엔 1년 동안 벌어들인 상금이 2600만원에 그쳤다. 결국 올해 전 경기 출전권(풀카드)을 잃어버리면서 후배들과 함께 시드 선발전을 치러야 했고, 여기서도 35위에 그쳐 올해 조건부 출전권을 따는 데 그쳤다.

“시드 선발전을 치르면서 골프를 포기할 생각도 했어요. ‘골프는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지난겨울 서희경 언니와 함께 하와이에서 전지훈련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경기 운영 능력·멘털·리듬 등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게 아닌데 희경 언니와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이런 것들을 배운 거죠.”

함영애는 또 “마지막 날 동반 라운드한 서희경 언니가 ‘스코어에 신경 쓰지 말고 침착하게 쳐라’고 격려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프로 데뷔 초기엔 ‘드라이버 입스(공포증)’ 때문에 무척 고생했어요. 예전엔 270야드가량 드라이버가 나갔는데 요즘엔 정확도에 신경을 쓰다 보니 거리가 240야드 정도로 줄었어요. 결국 거리보다 정확도가 중요한 걸 깨달은 거죠. 저의 이번 우승이 아직 우승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어요.”

함영애는 “절친한 동료인 (윤)채영이랑 둘 중에 한 사람이 우승하면 함께 유럽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며 “유럽 여행 경비는 내가 내겠다. 그런데 채영이도 곧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귀포=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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