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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부실 도시락' 계기로 본 사회복지사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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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 강희열 사회복지사가 서울 상도4동의 한 독거노인 집을 방문해 불편사항을 들은 뒤 이를 장부에 적고 있다.김상선 기자

얼마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실 도시락 파동은 부실한 사회복지 체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정부는 끼니당 단가를 올리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정부는 최근 7년 사이에 복지예산을 세배로 늘렸다. 그러나 사회복지 체계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는 2002년 이후 한 명도 늘지 않았다. 정부가 예산을 늘려도 정작 필요한 곳으로 수혈되지 못하는 이유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의 하루를 통해 복지체계의 허점을 살펴봤다.

지난 20일 오전 8시35분. 6년차 사회복지사인 강희열 (36.서울 상도4동)씨는 출근하자마자 전자문서시스템에 접속한다. 틈새계층 사업비, 심장병 무료 시술 등과 관련된 공문 5건을 접수한다.

"보육료 면제는 어떻게 받죠?" 9시30분, 이날 첫 민원인이 찾아왔다. 30대 주부였다. 강 복지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전세입니까, 월세입니까? 직업은 뭐죠? 차는 있어요?…. "

면담이 끝난 지 10분이 채 안돼 이번에는 40대 노숙자가 들이닥친다.

"생계비가 왜 18만원밖에 안 나왔죠?" 이번에 다시 기초수급자가 됐는데 생계비가 너무 적다는 항의였다. 강 복지사는 "장애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서류를 가져오면 생계비가 더 나갈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강 복지사는 "판잣집에 30여명의 노숙자가 모여 사는데, 어떻게 해야 생계비를 많이 탈 수 있는지 잘 아니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동사무소 2층 구내식당에서 20분 만에 점심을 해치운 뒤 곧바로 자리에 앉는다. 민원인이 몰려오기 전에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낮 12시50분,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원인이 밀려든다.

"아이 급식 받으러 왔어요." 이번엔 급식 대상 아동의 어머니였다. 라면 한 박스를 건넨다. 상도4동에 사는 급식 아동은 102명. 급식 확대 정책으로 두배로 늘었다. 도시락이나 식당을 알아볼 겨를이 없어 전원에게 라면이나 쌀로 대신 지급했다.

민원인의 방문이 이어진다. 보육료 지원, 장애인 고속도로 할인카드 발급, 기초 수급자 등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15명이 찾아왔다. 오후 3시10분, 가정 방문에 나선다. 기초수급자 신규 선정 외에는 현장 방문이 힘든데 이날은 모처럼 짬을 냈다.

"박근순 할머니는 요즘 어디 계시죠? 김정악 할머니 댁엔 누가 와 있나요?"

독거노인을 방문한 김에 다른 집 소식도 물었다. 어차피 일일이 방문할 수 없으니 동사무소에 찾아오지 않는 수급자들 소식은 이렇게 알아볼 수밖에 없다. 한시간여 만에 가정 방문을 마친 뒤 보고자료 작성에 들어간다. 벌써 퇴근시간(오후 6시)이 넘었다. 사회복지모금 사용계획, 공익근무자 인건비 등 각종 자료를 작성하고 오후 7시30분이 지나서야 사무실을 나선다.

그가 맡고 있는 국고보조 대상자는 수급자 253가구 471명, 장애인 1002명, 노인 2350명 등 모두 3823명이다. 강 복지사는 "2002년 수급자가 100가구 늘었지만 계속 혼자 맡고 있는데, 다른 업무가 계속 늘기만 한다"며 "이 때문에 '찾아가는 서비스'는 아예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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