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내외 경제 전망]수출·설비투자 살아야 '봄날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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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과거를 돌이켜 보면 새 정부 출범 때엔 항상 경제가 어려웠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집권하는 내년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경기의 발목을 잡는 복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라크 전쟁 위험과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 침체, 대내적으로는 가계대출 부실문제 등 난제들이 쌓여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내년 경제회복의 관건이 수출과 설비투자라고 보고 있다. 최근 몇년간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내수가 올 하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어 이를 메워줄 수출과 설비투자가 얼마나 살아나느냐에 따라 내년 경기가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또 가계부채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해 내수의 급강하를 막는 소비 연착륙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출·설비투자 회복 여부가 관건=경제연구소들은 최근 내년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전체 성장률은 종전 전망치대로 내다봤지만 내수와 건설투자 증가율은 낮추는 대신 수출과 설비투자 증가율을 높였다. 올해엔 내수와 건설투자가 경기의 버팀목 역할을 했으나 내년엔 수출과 설비투자가 그 몫을 대신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10월 1일 발표했던 내년 경제전망을 지난 22일 수정 발표했다. 전체 성장률은 5.6%로 같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은 5.0%에서 4.7%로, 건설투자는 4.5%에서 3.6%로 하향 조정됐다. 대신 수출이 9.4%, 설비투자는 9.2%의 높은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상반기 수출과 설비투자가 부진한 바람에 경제 회복이 더뎠다. 그러나 올 하반기부터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였던 수출이 내년에도 호조세를 이어가고, 수출 증가에 맞춰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살아나는 모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비슷하게 전망했다. 10월 18일 내놓았던 경제전망을 지난 20일 수정하면서 전체 성장률은 당초 전망(5.3%)을 유지했다. 그러나 민간소비 증가율은 5.1%에서 4.4%로 낮춰 잡았다. 반면 수출 증가율은 7.9%에서 8.3%, 설비투자는 8.1%에서 8.8%로 전망치를 높였다.

KDI 조동철 연구위원은 "내년엔 올해 효자노릇을 했던 내수가 둔화되는 대신 수출과 설비투자의 성장 기여도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2천8백여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내년 설비투자 계획을 조사한 결과 올 예상 실적치보다 2.8%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돼 설비투자 부진에 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반전 가능성=경제개발협력기구(OECD)를 제외한 모든 기관들은 내년도 우리 경상수지 흑자폭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LG경제연구원은 오히려 6억달러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에 기업들의 설비투자 확대로 자본재 수입이 크게 증가하는 데다 만성적인 여행수지 적자, 소비재 수입 증가 등으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내년 상반기에 일어날 가능성이 큰 미국·이라크 전쟁도 국제유가를 끌어올려 경상수지를 악화시킬 전망이다.

이미 기계류 수입액은 2분기 26.9%, 3분기 24.3%, 지난 10월엔 24.9%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 경상수지 악화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내수 급격한 둔화 막는 게 과제=전문가들은 내년에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 내수를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연착륙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내수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반면 수출 증가세에 비해 설비투자가 제대로 늘지 않아 걱정"이라며 "가계대출 억제대책도 내수가 너무 위축되지 않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jcomm@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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